캐나다에서 돌아온 후 나는 서울의 어느 중소기업에 취업을 했고, 그곳의 사장님은 여성분이셨다. 제조회사의 여자 사장이라 여기저기 엄청 유명한 분이셨는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었다. (왜 그런지는 밝히지 못하겠....)
어쨌든 그 회사에서 내가 맡은 업무는 해외 에이전트들을 관리하는 일이었고, 출장 갈 일은 더더욱이 없었다. 그래도 한번 홍콩으로 전시회를 회사 사람들과 함께 갈일이 있었는데, 괜찮은 회사가 아니었던지라 나는 같은 여성인 사장과 같은 호텔방을 쓰게 되었다. (정말 너무 아니지 않나?)
나는 사장님과 함께 개인적으로든 업무적으로든 이야기를 나누어본적이 없었다. 우리는 전시회 일정을 마치고, 사장님이 홍콩에서 야경으로 가장 유명하다는 어느 펍에 우리를 델고 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그렇게 멋진 곳은 아니었던 것같다. 그리고 호텔방에 가서 사장님과 호텔 바닥에 앉아서 미니바의 술을 다 꺼내서 함께 마셨던 기억이 있다. (사장님은 속옷바람으로 술을 드셨다...)
사람들이 홍콩을 그렇게 좋다고 하는데, 나는 홍콩을 보고 별 감흥이 없었던 걸 보면, 난 도시보다는 자연이 멋진 곳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홍콩은 내 돈주고 관광으로는 가지 않을 것같다..
그리고나서 10년 후 인가, 다른 회사에서 홍콩으로 출장 갈 기회가 있었다. 일정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2주 동안 소주-상해-홍콩-말레이시아-싱가폴이런식이었다. 한 명의 과장님, 다른 한명의 차장님 이렇게 셋이 함께 출장을 갔고, 이 두분은 사내에서도 재미없기로 소문난 분들이셨다. 관광을 다니더라도 셋이 조용히, 업무를 보더라도 조용히 다니게 되었다.
그날은 나의 생일이었다. 내가 두분에게 무언가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오늘이 제 생일이에요..."라고 말했고, 두 분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셨다.
아.. 그때의 무안함이란..
오해하지 않았으면한다. 그 분들은 정말 좋으신 분들이다. 내가 지금의 회사에 다니게 된 것도 이 두 분 중 한명이 뒷편에서 서포트 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두분은 그냥, 이런 상황이 익숙치 않았고, 츤드레? 이런 분들이셨을 뿐이다.
그게 마음에 쓰이셨던지 함께 간 차장님께서는 업무를 마친 후 석양이 지기전에 심사츄이에 가자고 하셨다. 거길 잠깐 관광으로 다녀왔었는데, 함께 간 차장님이 가방을 몽땅 두고 오는 바람에 다시 찾으러 가게 되었다. 그날 그곳으로 배를 타고 가는데 무지개가 떠 있는 것을 봤고, 무지개는 나에게는 항상 좋은 의미라 차장님께 가방을 찾을 수 있을 꺼라고 했고, 정말로 되찾게 되었다.
우리는 심사츄이 여행을 마치고 방으로 일찍 흩어지게 되었다. 나는 내 생일인 만큼 그냥 이 밤을 이렇게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쁜 원피스로 갈아입고, 무작정 호텔밖으로 나왔다. 홍콩의 거리는 도시숲들로 둘러쌓여있었다. 어디가 어디인지도 잘 모르겠고, 거리마다 높은 건물들로 다 막혀있어,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나는 펍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잘 찾았는데...
그래서 보이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와인을 한 병 구입했다. 많이 걷지 않은 터라 다시 호텔로 와인을 갖고 들어가서 혼자 홀짝홀짝이 아닌 벌컥벌컥 와인을 마셨다.
마시면서 그 당시 썸타던, 소개팅한 남자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이야기를 오래 나누었다. 그 전화는 차장님의 명의로 회사에서 빌려준 비즈폰이었는데, 이후에 휴대폰 요금이 200만원이 넘게 나와서 차장님께서 추궁을 당하셨다고 한다. (완전 민폐였던 거다..)
그리고나서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가 내 방에 있는 거다. 그리고 나한테 말을 걸었다.
"지금 호텔 방 밖으로 나가면, 내가 호텔 방문을 다시 열어줄게"
"내가 왜 그래야하는데?"
"한 번 나가봐, 내가 방문을 열어주는지"
"아 그래? 한번 그래볼까?"
난 맨발로 호텔방 문을 열고 나갔고, 문을 닫았다.
그 순간, 정신이 들었다. 아! 나 누구랑 이야기한거지? 난 왜 나온거지?
방법이 없었다. 나는 맨발인 상태로 로비로 갔다.
"뭘 도와줄까?"
"나 키를 안갖고 호텔 방문을 닫고 나와버렸어"
"아 그래? 그럼 너의 생년월일을 말해줄래?"
"응.. xxxx, 그리고 오늘"
"응?"
"오늘이 내 생일이야..."
직원은 웃으면서 호텔 방키를 나에게 하나 만들어주었다.
그때 생각하면, 정말 정말 다행인 것은, 내가 그때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당시 주로 술을 많이 마시면 열이 많이 올라와 벗고 잘때도 많았다.
그리고 짧은 시간동안이지만, 난 홍콩 귀신을 만난거다. 주로 그렇게 생생하지 않은데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대로 행동했다니, 장난꾸러기 홍콩귀신한테 걸린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