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해수사우나 즐기기

매일제주 102일차

by 꿈꾸는 유목민

글쓰기 강의를 들은지 4개월 차. 그곳에 젊게 사는 50대 언니가 있다. 언니는 성인의 놀이를 강조하는 어린이를 위한 상담사이다. 언니가 몇 차례에 걸쳐 사우나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스케치했다. 목욕탕, 사우나라고 하면 질색을 하는 나조차도 언니가 10회권을 끊어 간다는 그 해수 사우나에 가고 싶었다.


얼마전 읽은 요조의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에서 요조는 나이들면 따라할 수 있는 누군가를 곁에 두고 살고 싶다고 했다. 요즘 나도 주변의 멋있는 사람들을 따라하고 있는 중이다.


하루 전 한라산 영실코스를 무리하며 올랐더니 사우나로 피로를 풀고 싶다고 육지에서 온 남편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사우나를 좋아하는 남편은 바로 좋다고 했다.아이는 해수사우나가 뭔지도 모르고 좋다고 하더니, 내가 이런 곳이라고 보여주자 당장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은근히 가는게 귀찮았는데 아이가 가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니 다행이다 생각했다. 한 시간 후 아이가 가겠다고 다시 이야기한다.


"그래! 가자"


해수사우나의 가격은 1회권 성인 5천원, 아이 3천원이고, 10회권은 4만원이다. 10회권을 끊으면 무려 20%나 할인이 되는 마을 목욕탕에 가까운 곳이라고 어느 블로그에서 사전정보를 읽고 갔다. 오전 5시부터 문을 여는데 오전 7시부터 9시까지는 사람들이 엄청 많으니 애매한 시간인 오전 9시쯤 가면 좋다는 그 블로그의 설명에 따랐다. 10시30분쯤 도착해서 남편과 아들은 남탕에, 나는 여탕에 들어갔다.


오랫만에 들어간 여탕이었다.


옷을 얼른 벗고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괜히 왔다...."는 후회가 들었다. 목욕탕이 작은 규모가 아닌데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마을 반상회를 해수사우나에서 하는 처럼 바글바글, 앉아서 샤워할 자리도 없었다. 두리번 두리번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처럼 굴자, 어떤 아주머니께서 본인 옆자리가 비웠다고 얼른 나에게 손짓을 했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앉아서 샤워를 했다.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뜨거운 탕안에서도, 더 뜨거운 사우나 안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옥사우나에 들어가니 숨이 막혀 참을 수 없다. 잠시 헥헥 거리다가 뛰쳐나왔다. 맥반석 사우나에 들어가자 마스크는 참을만 했는데 바닥이 뜨거워 서있을 수가 없었다. 다시 뛰쳐나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신을 받아보고 싶어, 때미는 곳으로 쑥쓰럽게 다가갔으나 무뚝뚝한 제주 세신사님은 "기다려요"라고 짧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게 하나도 서운하지 않다. 신기한 경험을 하는 것처럼, 이상한 나라에 관광온것같은 느낌으로 피식 웃으며 세신사 옆에 나의 목욕탕 키를 올렸놨다. 하지만 이내 빨리 후딱씻고 나가야하지 하는 마음이 들어 키를 회수해왔다.


여탕 가판대에서 노란색 이태리타올을 사서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10년만에 밀어보는 때인가.. 때를 마지막으로 민게... 훨씬 전의 일이라 생각나지도 않는다. 열심히 팔과 다리를 밀고 있는데 옆 자리 아주머님이 어느새인가 앉으셔서 열심히 때를 미신다..

'함께 등 밀자고 하면 그러자고 해야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오른 손을 왼쪽 등 날개쭉지에, 왼 손을 오른쪽 등 날개쭉지에 간신히 다으며 때를 밀고 있었다.

"등 xxxxxx 밀어줌세" 라고 갑자기 옆자리 아주머니가 말씀하신다. 두번째 말씀하셨을때야 나에게 하는 말씀인지 알아듣고 "네! 좋아요"라고 얼른 이야기했다. 아주머니는 내 이태리타올을 오른손에, 본인의 이태리타올을 왼손에 끼시더니 전문가의 포스로 나의 때를 밀기 시작하셨다. 아주머니의 강력한 손길은 어제 햇빛으로 타서 따가운 나의 양 팔을 살을 벗겨낼것처럼 미셨다. 악소리가 나긴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라 참기로 했다. 아주머니의 손길이 닿는 곳에 나의 회색때들은 돌돌 말려 주변으로 흩뿌리듯 떨어졌다.


"너무 시원해요!"

"무사 무사" (무슨 무슨) 제주어를 쓰신다.

제주어라면 "기~~?" (정말?), "촘으라 촘으라" (참아라 참아라), "무사" (무슨) 밖에 모르는데, 그 중에 아는 단어가 나와서 다행이었다. 여탕에서 말씀하시는 사람들이 제주어를 쓴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대단하다 스스로 뿌듯했다. 하지만 '아주머니가 내가 제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시겠지?'라는 마음이 드는 건 왜인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아주머니는 어깨 마사지까지 꾹꾹 눌러 해주시더니 마무리 하셨다.

"너~~무 시원해요! 감사합니다!!, 이제 제 차례에요"라고 이야기하며 아주머니가 한 것처럼 양쪽에 이태리타올을 끼고 비누를 살짝 바른 후 아주머니의 등을 밀기 시작했다. 처음에 아주머니는 마음에 들어하셨다.

"해 본 솜씨네"

"에이 뭘요~ 방금 하시는 거 보고 배웠어요~"

손에 힘이 점점 빠진다. 거기다가 매주 해수사우나에 오신다는 아주머니의 등은 회색때도 흰색때도 나오지 않는 맨질 맨질 깨끗한 등이다. 어깨 마사지까지 했더니 아주머니가 그만해도 된다고 말씀하신다.

'휴~'


얼른 샤워를 끝내고, 아주머니께 인사하고 옷을 입으러 나왔다. 속옷만 입고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옆에서 머리를 말리던 아주머니가 아무말 없이 내 등에 손을 대시더니 꼬인 브레지어 끈을 바로 잡아주신다.


"아, 하하하하 감사합니다!"


몸을 움직여야 새로운 경험이 나온다.


때를 밀면서 '난 왜 목욕탕 오는 게 싫었을까'를 고민했다. 어린시절 겨울만 되면 일주일에 한 번 동네 목욕탕에 꼭 갔다. 일요일 아침 일어나 목욕바구니를 들고 집에서 10분이상 걸리는 거리를 걸어서 다녔던 기억이 났다. 싫었다. 추웠고 목욕바구니를 가지고 가다가 동네 아이들을 만날까봐 더 싫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내 몸을 남들이 본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친구들이 목욕탕을 같이 가자고 하면 당황스러웠다. 목욕탕 가는일은 발톱깍는일만큼 싫었다.


오늘 해수사우나를 즐기는 나를 보니, 아줌마가 되었구나.. 라는 생각보다, 이제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육지에서 남편이 올때마다 해수사우나에 함께 가는 일이 집안 행사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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