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에는 준비없이 가는구나 (23년 9월 3일 일요일)
아이의 글에서 여행가기 하루 전의 설레임이 느껴진다.
여행가기 3개월 전부터 반친구들, 선생님 그리고 동네방네 먼저 소문내고 다녔던 어린이다. 아이는 나름대로 여행 전 준비해야하는 것들을 준비했다. 얼마 전 산에서 잡았던 달팽이는 풀어주고, 한해 전 자연에서 잡았던 1년이 넘어도 살아있던 사슴벌레는 같은 반 친구이자 이웃친구에게 부탁했다. 3개월 후에 아이 친구 엄마에게 고백을 들었다. "죽을까봐 뒤집어질때마다 바로 놔주고를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몰라요" 감사한 일이었다.
여행가기 1주일까지 남편과 유럽 여행을 루트를 결정하지 못했다. 남편은 강한 주장은 없는 사람으로 왠만하면 내 의견을 다 따른다. 좋은 면도 있지만 문제는 함께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래도 또 다행인 건 우리의 여행을 이끌어 줄 양영훈 저자의 '알프스 자동차 여행 66'이라는 가이드 책자가 있다. 지금 생각하면 남편에게 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냐고 화냈던 순간이 챙피하다. 독서의 기록 출간과 북토크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함께 여행을 준비해야하는 팀에서 빠지려고 했으니 말이다.
우리의 구세주 알프스 자동차 여행 66을 살펴보며, 캠핑카로 가려고 했던 포루투갈은 2,500km, 크로아티아는 1,500km 을 운전해야해서 불가능한 라우트라는 걸 합의를 보고 (남편은 마지막까지 운전할 수 있다고 우겼지만, 여행의 마지막에는 한달간 불가능한 라우트였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스위스 알프스를 중심으로 프랑스 몽블랑, 시간이 되면 이태리 돌로미테까지 가기로 했다.
나의 유럽여행 루트에는 스위스가 없었는데, 스위스가 주요여행지가 되어버린 이 상황은 웃프기도 하지만, 이게 바로 여행준비의 묘미 아닐까. (둘다 MBTI의 극 P형임이 드러난다) 여행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지우기 위해 EBS 세계기행 스위스 편 4편을 가족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 쪼로록 앉아서 감상했다. 세계기행에 나온곳은 다 가봐야지라고 생각하며 적어두지는 않았다. 우리가 저 곳에 가려고 하다니, 멋지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불안이 스물 올라왔다. 준비없이 가서 대부분 놓치는 거 아니야? 나는 왜 가야할 곳을 정리하고 있지 않은거지?
EBS 여행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기대에 찬 아이에게 스위스 여행 계획을 짜보라고 했다. 기대하지 않았다. 아이는 유튜브를 보며 열심히 A4용지에 가고싶은 곳의 이름을 적어내려갔다. 이게 된다고? 초등학교 2학년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나름 세계를 누비며 다녔던 엄마아빠보다 조사하는 방법도, 내용도 밀도 있고 낫잖아? 자료조사하는 아이를 실컷 띄워주고 그 리스트를 여행준비물에 담았다.
여행 1일 전이다. 1주일전부터 물밀듯이 밀려들어온 여행준비물 택배에서 뺄꺼 빼고 넣을 것 넣고, 티격태격, 감정이 격해지기도 하고 설득하기도 하며 준비했다. 어쨌든 떠난다. 무엇이 될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