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영국편 쓰기 전 한국편
지금부터는 좀 조심스러운게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와 연결되어있는 업무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적나라하게 깔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의 별의 별 사람들과 회사 정책, 그리고 했던 업무의 상세함.. 하지만 제목대로 뒤죽박죽 세계여행이니, 내가 경험한 나라와 사람에 대해서는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싱가폴에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출근은 한달간 시청으로 하다가, 회사가 강남으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다니게 되었다. 이모네 집이 그 당시에는 강변역 근처에 있어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할 수 있으니 최상의 환경이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가장 핫한 강남으로 출퇴근을 하다니, 나도 도시녀가 된 기분이었다.
신분은 협력사 직원, 말이 좋아 협력사 직원이지 외주직원이나 다름없었다. 외주직원은 계약직은 아니고, 특정 회사에 소속되어있지만 다른 회사로 파견되어서 일하는 직원이다. 그런 구조가 있는지는 알았는데, 내가 직접 협력사 직원이 되어 일을 해보는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불공평함과 차별이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운이 좋겠도 내가 속한 부서는 협력사 직원들이 대부분이었고, 협력사 직원이든, 정규직이든 상관없이 업무가 주어졌고 그 업무를 능력에 따라 수행하면 되었다. 특히 정규직보다 능력이 뛰어난 협력사 직원들도 많다고 생각했다. 일단 우리 부서에서는 직원을 뽑는 기준은 일단 영어가 되고, 30대초, 중반일 것이었다. 왜냐하면 3개월동안의 한국 프로젝트가 끝나면 1-2년동안 해외를 돌며 업무 설계를 하기 위한 해외 담당자들을 인터뷰를 해야하고, 교육을 해야했기에 기본적으로 영어를 해야했다. 물론 다른 부서는 프로젝트하는 나라마다 영어 통역들과 함께 업무를 하였으나 우리 부서는 부서장님이 기본적으로 통역은 필요없다. 우리가 직접 한다. 주의였다.(본인은 영어를 못하지만?) 그리고 그에 맞게 외주직원들을 뽑았다고 할 수 있다.
처음 입사해서 1주일간은 빡세게 교육을 받았다. 그 회사만이 사용하는 전문용어도 너무 힘들었고, IT 문서들에 대한 교육또한 어려웠는데, OJT가 끝나는 마지막날은 영어로 업체들 앞에서 문서 스펙같은걸 설명하는 설명회를 시연해야했다. 거기다가 부서장님은 술을 너무 사랑하셔서 나와 내 동기는 일주일에 3번정도 함께 부서 사람들과 술을 마셨어야 했다. 그때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이모네 집에 어떻게 도착했는지 모를정도로 인사불성이 되는 날이 이어졌고, 다음날은 아침 7시 30분까지 출근하지 않으면 부서장한테 찍히기 때문에 오기로 그 시간전에 출근해서 업무를 보기도 했었다. OJT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빡센 교육 후에는 더 빡센 업무가 주어졌다. 빡세다는건, 아마도 그 업무를 익히기 위한 과정이었던것 같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함께 근무를 하다보니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 그냥 평범하게 살았으면 만나지 못할 유형의 사람들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나보다 2주일 먼저 입사한 나보다 1살어린 여자의 이야기다. 2주일 먼저 입사했기에 우리보다는 많이 알고 있었고, 이미 OJT 테스트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는 그 아이는, 처음에는 나를 경계하는 것같더니 어느 순간 먼저 다가와서 나를 언니라고 불러도 되냐고 하며 엄청 안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갑게 대하니 나도 싫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입사한지 4주정도 되었을까? 그 아이가 나한테 회사 메신저로 200만원을 빌려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바로 자리로 가서 불러다가 무슨일이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방금 남동생이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서 수술을 급하게 해야하는데 자기 돈이 다 적금에 묶여있어서 돈이 급하게 필요하다고 했다.
음.. 나는 그 자리에서 회사 ATM기로 가서 200만원을 뽑아주었다. 월급날까지는 2주정도 남았고 월급을 받으면 바로 갚겠다고 하니, 문제될 건 없었다.
그리고는 그날 나한테 함께 술을 마시자고 하는 거다. 그 당시는 왜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한참지난 후에는 남동생이 오토바이사고를 당해 수술을 할 정도면 당연히 바로 가봐야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 강남 지하에 있는 술집에서 밤 12시까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보다 한살 어린 사람이었지만, 상당히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자기는 원래 연세대에 들어갔는데 대학생이 매일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염증을 느껴, 자퇴를 하고 호주에가서 4년동안 장학금을 타며 학교를 다녔다는 이야기. 그리고 한국에와서는 학벌이 너무 좋으면 안되니까 아버지 친구분이 지방에 이름없는 대학의 학장이어서 그 대학의 졸업장을 만들어주셨다는 이야기. 자기는 망막색소결핍증? 머 이런 병에 걸려서 5년안에 눈이 먼다는 이야기등.. 그때의 나로서는 정말 믿을 수 없는, 하지만 너무 빠져드는 이야기들을 듣고 함께 웃고 슬퍼해주었다. 그 당시 그 아이와 술을 마시고 돌아와서 블로그에 글도 쓴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동생한테 해줬는데 동생이 나더러, 언니 그 말을 진짜 믿냐고 하는거다. 누가봐도 걘 지방에 그 이름없는 대학에 나온거고, 그 200만원은 동생의 수술비가 아닐꺼라고....
10만원 넘는 술값은? 내가 냈다.
5년후에 눈이 먼다는 건?
13-14년이 지난 지금도 멀쩡하게 잘 걸어다닌다.
빌려준 200만원은? 월급 받고 안주길래 달라고 했더니 그 다음날 갑자기 현금으로 200만원 돈뭉치를 들고와서 준다고 했다. 계좌로 넣어달라고 했다. 나중에 그 여자애와 동기였던 두명한테 들었는데, 그들한테 자기 카드값을 갚아야한다고 200만원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아무도 안빌려줬다는... 그 200만원은 나한테서 나왔다는... 그리고 그 이후에 돈뭉치 200만원은 누구에게 빌린건지는 알 수 없다. 비밀이 많은 아이다.
지금은? 잘 살고 있다. 어쩌다가 그 이후에 같은 회사로 흘러들어왔는데, 결혼도 넘 잘하고 아이도 낳고 잘 살고 있다. 뻥은? 여전하다. ㅋㅋㅋㅋㅋ
어쨌든 한국에서의 생활은 그 여자애덕에 심심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오픈 후 밤새는 한국 프로젝트가 끝나고 그 다음에는 3개월간 독일 장기 출장이 예정되어있었다.
꿈꾸는 유목민
세계여행의 기록
독일, 영국가기전 한국에서 프로젝트하기
#세계여행의기록 #세계여행에세이 #한국에서살기 #별의별사람들만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