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인식장애는 아닙니다.
올해 2월부터 달리기를 시작한지 반년,
매일 달리는 건 무리라고
저의 운동멘토님께서 여러번 말씀해주셔서
하루는 달리고, 하루는 걷고를
반복하고 있어요.
치앙마이에서도 걷고 달리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3주동안은 아이 스포츠 캠프 근처의 콘도에
살아서 마을 한바퀴를 돌면 약 3.6km 정도
되었어요.
개들만 아니면 완벽하게 한바퀴를 돌 수 있는데,
10마리씩 무리지어있는 들개떼들을 뚫고
달리는 날들도 좀 있었습니다.
아이는 3주간의 스포츠 캠프를 마치고,
한국돌아가기 전까지 1주일동안
아트캠프를 하고 있어요.
1주일간 산티탐이라는 올드시티중에서도
현지인들이 많이 산다는 곳에
호텔을 잡았습니다.
올드시티는 뛸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아요
도로의 상태도 좋지 않고,
신호등이 있는 곳은
약 10분은 기다려야 건널 수 있는 곳들도 있어요.
아니면 그냥 무단횡단해야합니다.
시내에서 어떻게 뛰어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김초엽작가님께서 치앙마이대학교를
추천해주셨는데요
거리를 보니 걸어가는 동안
뛰어야하는 거리를 다 걷겠더라구요.
택시타고 치앙마이대학교에서 가서 뛴다고?
처음에는 아예 생각도 안했는데
막상 올드시티에 오니까
택시타고 치앙마이 대학교에 가서
뛰고 오는게 최선의 방법이라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걷는 날이었는데요,
치앙마이대학교에 인터넷이 빵빵하게 터지는
좋은 카페가 있다는 블로그 정보를 입수하고
아이를 아트 캠프에 걸어서 데려다 준 후
치앙마이대학교로 향했습니다.
카페 이름은 '블루커피'였어요.
치앙마이대학교가 커 봐야 얼마나 크겠어?
하고 걷기 시작했다가,
거의 5-6 km 를 땡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블루커피에 도착했어요.
coworking place라고 써져있는 블루커피는
일인용 책상이 쭉 늘어져있는
딱 제가 원하는 카페였습니다.
대부분 자리가 차 있었는데,
일인석이 약 두 자리 비어있는 걸 확인하고
그쪽으로 돌진했어요.
비어있는 한 자리를 보고,
창가쪽에 비어있는 자리로 이동하려고 하는 순간
따로 앉아있던 남자분과 여자분이
저를 엄청 반갑게 아는 척 해주시는 거예요.
(두 분은 부부인듯했어요)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한국사람을 오랜만에 봐서 아는 척하신다는..
그런 이야기였던듯해요.
땀이 주르륵 흐르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저도 진짜 오랜만에 한국분과
이야기할 수 있어서
반갑게 맞받아쳤어요.
두 분 옆자리가 비어있어서
그곳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주문하러 가려고하는데,
여성분이 저에게 다시 말을 거시더라구요..
"누구누구가..너무 잘해줘서.. 고마워요.."
'응????'
아! 사람을 잘 못 알아보신거구나.. 싶어서
제가 웃으면서
"아! 사람을 잘 못 보신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거든요.
근데 두 분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으시더라구요.
아.. 사람을 잘못 알아본 건 상대방인데
표정이 갑자기 싸늘하게 식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다른 쪽에 자리가 났길래 그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그 분들도 저도 좀 민망한 상황이었죠.
이것저것 작업을 좀 하고,
택시를 타고 갈까하다가
이번에도 열심히 걷기로 했죠.
땡볕이었지만 운동화를 신고 선글라스를 쓰니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그리고 아트캠프에 3시 정각에 도착해서
의자에 앉아있는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까 블루커피에서 저에게 아는 척을 하셨던
여성분께서 서 계시는게 아니겠어요?
응???
맞은 편을 보니,
남편이신듯한 분은 앉아계셨습니다.
응???
얼른 상황 파악이 되어서
일어서서 여성분께 다가갔습니다.
"혹시 아까 블루커피에서 아는척 해주신분 맞으신가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맞은편에 계신 남편분께서 아내분과 제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더라구요.
여성분도 맞다며..활짝 웃어주셨어요.
정말 민망한 상황이었죠.
두 분은 저를 알아봤는데
저는 그 두 분을 처음 뵈었거든요.
저는 죄송하고 당황해서
"아.. 제가 사람 얼굴을 잘 안보고 다녀서,
두 분을 한 번도 못뵈었어요.."
이 말을 좀 반복했습니다.
근데 처음뵌게 아니라,
아이의 스포츠 캠프 3주 동안
그 부부의 아이들도 동일하게 3주를 같은 곳에 있었고,
스포츠 캠프를 마치자마자,
그 다음주 아트 캠프도 같은 날 등록을 하고
1주일간 함께 다녔더라구요.
토달 한달을 같은 곳에서
계속 아이를 데려다 주고,
데리러 오며
마주쳤던 겁니다.
물론 저희 아이가 저에게 이야기하긴했어요.
"엄마, 스포츠캠프에서 같이 있었던 동생들이,
아트 캠프에도 왔다?"
전.. "그래?" 그러고 말았죠.
그런데 그 분들은 저의 아이 이름도 알고 계셨어요.
"저희 아이들이 영어도 한 마디도 못하고,
이런 캠프도 처음이라 많이 걱정했는데
한국 아이들이 많은데도
태윤이 오빠랑 형이 가장 잘 보살펴줬다며
매일 이야기했어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데
선생님한테 이야기해야할 상황이 오면
태윤이 형이 나서서 선생님과 의사소통도 해줬다고해요.
그래서 너무 의젓하고 고마운데,
고맙다는 말을 할 기회가 없었어요.
감사합니다"
"네???? 저희 아이도 영어 못하는데요?
아하하하하
치앙마이 오기 전에 3개월정도 엄마표 영어한게
다인데요...
자기도 영어 못해서 다른 친구들이 도와줬다고 했는데..."
"어.. .이상하네요.. 선생님한테 이야기도 해주고,
많이 도와줬다고 해요.. 잘 놀아주구요"
'저희 아이 이야기 맞죠...?'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맞는 것 같았어요.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안해서, 저는 태윤이가 스포츠 캠프를 다녀온건 맞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아하하하.. 근데 태윤이가 외동이기도하고, 동생들을 좋아하고 잘 보살펴주기는 해요.."
"네 맞아요.. 엄청 세심하게 잘 챙겨줬다고 하더라구요"
철없는 외동아들이 갑자기 엄친아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도 이런 감정을 느낄때가 있네요..
두 아이의 어머니께서는,
태윤이에게 자기 아이들 잘 보살펴줘서
든든하고 고마웠다고 꼭 칭찬해달라고
신신당부까지 해 주셨습니다.
저는 제주에 살고 있다고 했더니,
본인들도 제주에 예전에 살았고 (그것도 바로 옆동네!),
지금은 분당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는 판교에서 제주로 이주했다고 이야기해드렸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도 다음주 수요일 자정비행기로
동일했어요. 이쯤되면 인연아닌가요?
거의 같은 날 도착해서
한 달동안 같은 공간에 있었으면서도
몰랐던 분들을
헤어지기 하루 전에 친해지고 알게 되다니
너무 아쉽더라구요.
아.. 그나저나..
그분들은 절 계속 봤다고 하는데,
저는 정말 한 번도 얼굴을 뵌 기억이 없어서,
가만히 생각해봤는데요..
하도 입력되는 정보가 많아
의도적으로 뇌가 나와 관련없는 정보는
걸러주는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한 번 각인된 분의 정보는
잘 기억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