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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떨어진 차, 멈춘 가족 여행, 그리고 이어진 기적

다시 쓰는 뒤죽박죽 세계여행기, 말레이시아 카메룬 하일랜드

by 꿈꾸는 유목민

자신을 이러저러한 사람이라는 틀에 가두지 말고, 여행 중에 자신이 어떤 사소한 선택을 하는지 무엇에 이끌리는지 관찰해보자. 때론 당황스럽겠지만 때론 무척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여행하는 인간/문요한/p111)


말레이시아는 1년 365일 더운 나라다. 사계절 보유국의 시선에서는 모두 여름이겠지만 그렇다고 전부 여름은 아니다. 나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 꽃이 더 왕성하게 피는 달이 있고, 낙엽처럼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달이 있고, 비가 많이 오는 우기도 있고, 쨍쨍한 날들이 이어질 때도 있다. 그런 말레이시아에도 시원한 지역이 있었으니, 카메룬 하일랜드이다. 고산지대에 있어 시원하고, 녹차밭이 넓게 펼쳐져 있는 초록이 눈을 확 트이게 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우리나라 고성 녹차밭 몇십 개를 붙여놓은 듯 광활한 곳이기도 하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동안 페낭에서 3시간 운전하고 가야 이를 수 있는 카메룬 하일랜드를 약 5~6번은 다녀왔다. 갈 때마다 좋았다. 녹차밭, 그리고 그 으슬으슬한 가을 날씨 같은 곳에서 먹는 따뜻한 스팀보트까지. (스팀보트는 샤브샤브 같은 건데, 치킨스프나 비프스프안에 야채, 고기, 어묵, 새우등을 넣어서 먹는 말레이시아 음식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카메룬 하일랜드 여행은 가족 함께 했을 때이다. 가족이 말레이시아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산지대에서 더 잘 자란다는 배추도 사러 갈 겸, 항상 더운 말레이시아에 시원한 공기를 경험하게 해 드리고 싶었다. 마침 말레이시아 휴일, 우리 가족은 카메룬하일랜드로 향했다. 중간에는 휴게소를 들르기도 했다. 한국의 휴게소와는 비교할 바 아니지만 새로운 음식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부모님은 좋아하셨다. 주유소를 여러 번 지나쳤고, 기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카메룬 하일랜드에서 주유하면 되었다. 카메룬 하일랜드로 올라가는 길의 중간쯤 왔을까, 기름은 바닥이 났고 주유소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주유 등이 딩딩 거리고, 도로 중간에 차가 멈출 수 있다는 판단하에 공터 어디쯤 차를 세웠다. 발만 동동 굴러봤자 소용이 없다. 문제가 닥치면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가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카메룬 하일랜드 어디에서 주유할 수 있는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다음에 우리는 지나가는 차를 세우고 물어보기로 했다. 뒤에서 아버지께서 농담으로, “치마를 조금만 올려봐 봐” 하셨다. 우리 가족은 깔깔 웃으며 아빠 맞냐고 맞받아쳤다. 심각하지만 심각하지 않은 상황…. 심각한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마도 덴마크 친구 예스한테 배운 건가…. 상황은 벌어졌고, 어떻게든 상황은 벗어날 수 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유머다. 차들은 서주지 않았지만, 다행히 오토바이 한 대가 우리 앞에 섰다. 무슨 일이냐 묻는 것 같았다. 말레이어를 사용하는 현지 사람이었다. ‘차에 기름이 없는데 주유소가 없어….’ 라고 손짓 발짓 춤을 추듯 몸으로 말했다.

‘오늘은 말레이시아 휴일이라 모든 주유소가 문을 닫아…. 그리고 카메룬 하일랜드에는 주유소가 하나밖에 없어. 근데 거기도 오늘 문 닫았을걸?’ 대충 이런 의미였던 듯하다. 영어 대화가 안 되었을 텐데 궁하면 다 통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음…. 내가 아는 절이 있는데 그곳에서 기름을 달라고 하면, 조금은 얻을 수 있을 거야.”

“도와줄 수 있어?”

“그럼, 내 뒤에 타고 같이 가서 차 기름을 받아서 차에 넣자.”

감사한 호의를 우리는 받기로 했다. 내가 친절한 아저씨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고불고불한 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작은 절이었다. 절에서 우리 가족의 상황을 아저씨가 대신 설명했고, 석유통에 차가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기름을 채워 넣을 수 있었다.


우리는 감사의 표시로 50링깃을 내밀었다. 거듭 거절하는 천사 같은 아저씨를 그냥 보낼 수 없어 억지로 받게 했다. 그러니까, 이 분은 무언가를 바라고 남을 도와준 사람이 아니었다. 여행 중 원하지 않는 호의를 베풀며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바라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그렇지 않아서 더 챙겨주고 싶었다.


전혀 모르는 이방인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 발 벗고 도와준 말레이시아 아저씨는 우리에게 내려온 천사였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도 있었느니라-히브리서 13장 2절) 무엇보다 카메룬 하일랜드에서 만난 친절한 아저씨를 떠올리면 모든 것이 준비된 완벽한 여행 말고 어딘지 모자란 여행에서 만나는 좋은 사람들과 우연히 찾아온 행운으로 행복한 순간, 그게 바로 여행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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