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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들어 부르지 마세요” 스위스에서 시작된 싸움

벨기에에서 끝나다. 다시 쓰는 뒤죽박죽 세계여행기

by 꿈꾸는 유목민

"우리가 여행에서 배우는 것 중 하나는 우리 자신의 문화가 결코 유일한 해답이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출처미상)


내 출장 인생의 최고 전성기 헝가리 프로젝트를 하기 전, 슬로바키아와 헝가리로 사전조사를 위한 출장을 갔다. 부서장님도 동행한 부담스러운 출장이었다. 슬로바키아 출장 기간 중 주말이 결혼 1주년 기념일이었다. 슬로바키아에 도착하고 이틀 후 남편은 갑작스럽게 스위스 출장을 가야 한다고 했다. 남편은 자동차 회사 엔지니어인데, 본사 임원이 스위스에서 몰던 차가 섰다며 한국에서 급히 엔지니어를 파견해달라고 했다. 남편이 스위스로 급히 출장 왔다고 부서장님께 편하게 말씀드렸다. 부서장님께서는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으니 비행기 표를 끊어 남편을 만나러 스위스로 가라고 하셨다. 부서장님은 로맨티스트였다. 다른 부서원들에게는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오페라 극장에서 오페라를 보여주셨다 한다.


주말에 스위스 공항에 내려 호텔에 도착해서 남편을 만났을 때 남편은 시차 적응과 함께 임원의 차가 고장 난 원인을 알아내야 하는 부담감으로 스트레스가 고조에 이른듯했다. 남편과 융프라우 꼭대기에서 신라면 사발면도 먹고 티격태격하며 인터라켄까지 내려왔다. 인터라켄의 어느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피곤했지만, 곧 맛있는 음식과 맥주를 마실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한참을 기다렸는데, 웨이터가 오지 않아서 손을 들어서 불렀고, 웨이터가 주문을 받았다. 맥주부터 가져다줬으면 해서 다른 웨이터에게 맥주를 먼저 달라고 했다. 처음에 주문을 받았던 웨이터가 음식을 가져오면서 기분 나쁘게 대응을 했다.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웨이터가 한 말은 외국인인 나에게도 상당히 예의 없게 느껴졌다. 기분 나쁘다는 걸 나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레스토랑 매니저가 오더니 여기는 스위스이니 자기네 법을 따라야 한다면서 우리더러 나가달라고 했다. 남편은 우리가 잘못한 게 없는데 그들에게 계속 ‘I am sorry’만 반복하고, 나는 우리가 뭘 잘 못 한 거냐고 따졌다. 우리가 잘못한 게 없는데 오빠는 왜 미안하냐고 하고. 그게 반복이 되었다. 우리는 결국 레스토랑에서 맥줏값만 지급하고 나왔는데, 인터라켄 한복판에서 그렇게 나는 울고불고 난리 났다. 우리는 그날 밤 화해를 하긴 했으나, 그때의 서운함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인터라켄의 레스토랑에서는, 왜 나에게 complain을 했는지 몇 년 후에 알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1년도 안 되어 네덜란드 프로젝트에 투입됐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합쳐 8개월 후에 출근했고, 바로 헝가리, 독일 출장업무를 맡았다. 독일 출장 중에, 조직이 개편되었는데, 내 인생 최악의 부서장이었던 사람이 다시 내 부서장이 되었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접하고, 부서를 탈출하고 싶었다. 운영 부서에 있었는데, 해외 사업을 하는 부서로 바꾸겠다고 부서장에서 팀장으로 진급하신 분께 연락드렸다. 물론 팀장님께는 예전부터 네덜란드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다고 말씀드렸다. 60% 정도는 사실이긴 했지만 40% 마음의 망설임은 최악의 부서장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팀장님은 부서를 옮기지 말고, 원하는 부서로 파견을 보내주겠다고 하셨다. 네덜란드 프로젝트 출장 멤버 중에는 함께 일해 본 사람을 포함해 대부분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었다. (한 명 빼고) 나는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아줌마였고, 나머지도 자녀가 있는 아저씨들이었기에 아이 낳기 전에 다녔던 헝가리, 슬로바키아 출장만큼 활기찬 출장은 아니었다. 유럽 출장의 최고 장점은 가는 곳마다 안구 정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중에는 빡세게 일을 하고, 토요일 출근을 한 후에 일요일은 대부분 짧게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하지만, 멤버 구성은 호텔에서 편히 쉬는 걸 좋아하는 기혼자들이었다. 여행을 다니는 것보다는, 호텔 가까운 근처 카지노에서 온종일 동네 형들처럼 입 벌리고 앉아있거나, 자기들끼리 남녀혼탕을 가거나…. 아니면 뭐 하는지 모른다. 총 기간을 합치면 네덜란드 출장 기간이 약 5개월 정도 되었는데, 프로젝트 멤버들이 함께 여행을 다녀온 곳은 벨기에와 룩셈부르크가 전부이다.

사건은 벨기에 여행 중 일어났다. 벨기에 네덜란드에서 당일치기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이다. 네덜란드는 물류의 나라라 고속 도로 상태도 상당히 부드러워 벨기에까지 운전하기도 편하다. 벨기에의 도로는 물론 다르지만. 프로젝트 멤버 네 명은 아침 일찍 출발했다. 날씨는 추적추적 비가 왔지만 우리는 안구 정화를 하며 벨기에 중앙광장에 있는 좀 유명해 보이는 와플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일단 와플을 주문했다. 그런데 웨이터가 와플을 식탁에 던지듯이 놓고 갔다. ‘뭐지?’ 하고 서로 눈치를 봤지만 ‘우리는 관광객이니까 이런 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안 되지.’ 하며 넘겼다. 와플을 더 주문하자며, 함께 간 프로젝트 매니저(이하 PM)가 손을 들고 “hello ~” 라고 했다. (순간 스위스 인터라켄의 기억이 떠오르며 불안이 밀려 들어왔지만 입을 다물었다)

웨이터가 오더니, 메뉴판을 주면서 묻는다.

"너희들 어느 나라에서 왔니?"

PM은 자랑스럽게

"우리는 한국에서 와서"

웨이터가 다시 말한다.

"너희 나라에서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부르니?"

스위스에서의 상황이 겹쳐지며, 웨이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세 명은 무슨 영문인지 몰랐고, 다만 상황이 기분 나쁜 나쁘게 흘러간다는 걸 눈치챘다.

"유럽에서는 레스토랑에서 웨이터와 눈이 마주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있어…. 그 이야기를 하는 듯해."

특히 PM은 대부분 프로젝트를 중국, 동남아에서 했기 때문에, 식당 직원에게 손을 흔들며 “Hello, Mr” 이런 식으로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웠으니 벨기에 와플 집에서 손을 흔들며 직원을 부른 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기분이 상한 우리는, 추가로 주문하지 않고 레스토랑에서 나가 관광을 하기로 했다. PM이 지폐를 주며 계산을 하는데 직원이 거스름돈을 전부 50센트로 하나씩 세면서 주었다. 50센트를 10개 넘게 받으며 우리는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반전은, 웨이터의 손에는 2유로짜리 동전도 있었다.

황당해하며 PM이 "2유로도 있는데 왜 다 50센트로 주는 거야?"

그랬더니, 여기서 웨이터의 말이 당혹스럽다.

"You treat me like a dog, so I treat you the same" (네가 나를 개처럼 다뤘기 때문에, 나도 너를 개처럼 다루는 거야)

일단 우리는 싸울 만큼의 영어 실력도 되지 않았고, 무엇을 잘 못 했는지 모르니 관광객으로서 난동을 피면 우리만 손해라 생각하고 레스토랑을 나왔다. 싸우지 않고, 나왔지만 출장 멤버들의 기분은 처질 수밖에 없었다. 레스토랑에서는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었지만 나는 처음으로 구글 place에 긴 평가를 남겼다. 이 전 평가에도, ‘동양인들에게 우호적이지는 않다’라는 후기가 꽤 있었다.


유럽 나라마다 다르지만, 독일이나 스위스, 벨기에 같은 나라는 레스토랑에서 절대 웨이터에게 손을 들어 소리높여 부르면 안 된다. 테이블로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거나 눈이 마주치면 잠깐 눈을 끄덕하는 정도로 반응해야 한다. 성질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힘든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테이블을 담당하는 웨이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해서, 팁을 받는 그런 문화이다.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나는 맥주를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웨이터를 불러서 맥주를 부탁했으니, 첫 번째 웨이터는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여겼을 것이다. 유럽은 웨이터들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해서 손님이 손을 들고 자신을 부르는 행동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니, 남편이 싸움을 만들지 않고,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하고 나온 건 현명한 일이었다.


특정 나라를 여행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몸짓, 행동, 말이 있다. 세계 여러 나라를 출장 다니면 다른 문화를 익히고 이해하며 다름을 인정하는 능력치를 가진다. 하지만 벨기에 와플 레스토랑의 경험은 백번 양보해도 절대 유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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