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뒤죽박죽 세계여행기, 브라질 이과수
인간은 어떤 경험을 기억할 때 그 전체 과정의 평균이 아니라 가장 강렬했던 순간(Peak), 마지막 순간(End), 이 두 순간만을 대표값처럼 기억하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론 (대니엘 카너먼)
너무 일찍 경험한 경이로운 여행지는 다음에 경험하게 될 여행지의 감동을 미리 망치기도 한다는 건 브라질 이과수에 다녀온 후 깨달은 진실이다.
대기업의 협력사 직원으로 3년간 근무하다 대기업으로 경력 입사했다. 같은 해, 같은 달 결혼이라는 큰 인생의 과업도 완료했다. 경력입사 후 그룹 교육은 신혼여행을 하고 온 후 그룹사 동기들과 3박 4일간 합숙 훈련을 했다. 다양한 그룹사가 한 조에 모여 있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회사 블로그에 작성하고, 나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인생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된 교육이었다. 그때 ‘20년 전 정한 닉네임, 꿈꾸는 유목민이 나의 정체성이 아닐까?’ 생각하며, 세계 여러 나라 여행 경험을 입사 동기들 앞에서 발표했다.
"다음 가보고 싶은 나라는 어디인가요?" 누군가가 질문을 했다.
"브라질이요!"
5대양 6대주 중에 가보지 못한 대륙을 집어서 브라질이라고 대답했지 정말 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룹 합숙 교육 2주가 끝날 무렵에 부서장님이 전화하셨다. 고객사와 Task Force 업무 중 다음 목적지는 브라질이고, 출장자에 나를 포함했는데 괜찮냐고 물어보셨다. 입사가 결정되고 결혼날짜를 잡자 부서장님이 많이 당황하셨다. 출장을 자주 다녀야 하는 직업이라 곤란하셨던 듯하다. 하지만 결혼 여부에 따라 출장을 결정하고 싶지 않았다.
대기업에 경력 입사해서 처음으로 가게 된 브라질 출장으로 설렜다. 결혼한 지 한 달 반, 신혼여행 다녀온 지 이 주만이었지만 경력이 더 중요했다. 급하게 결정된 출장이고, 황열병 주사는 인천항 근처 보건소에서 맞았다.
브라질 대륙을 눈여겨본 게 처음이었다. 출장 갈 곳은 마나우스 2주, 깜삐나스 2주였다. 유명한 아마존은 마나우스에 있다고 들었다. 말로만 듣던 아마존, 마나우스 공장과 숙소가 아마존 밀림 안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일단 캐노피(커다란 그물 모기장)를 샀는데, 황열병 주사를 맞아야 할 정도면, 모기가 위험한 나라임이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출장자들은 나 포함 8명이었는데 그들에게 캐노피를 샀다고 하니, 마나우스가 캐노피를 준비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캐노피는 바로 환불했다.
브라질 마나우스는 환승 시간 합쳐 비행시간이 거의 30시간이었다. 다행히 과장부터는 비행 20시간 이상이면 비즈니스 클래스를 탈 수 있었다. 한국에서 미국 디트로이트까지,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브라질 상파울루 과룰루스 공항까지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각 12시간, 12시간, 5시간을 비행했다.
브라질 출장일정대로라면, 마나우스 2주, 깜삐나스 2주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어야 했다. 돌아가기 며칠 전 본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나만 상파울루 사무실에서 다른 업무를 마무리하고 돌아오라고했다. 우리 부서일도 아니었다.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었는데 발버둥 쳐도 어쩔 수 없었다. 함께 출장 온 사람들은 깜삐나스에서 공항으로 바로 가지 않고, 내가 있을 상파울루까지 차로 내려주고 공항으로 가는 일정을 잡았다. 혼자 택시를 타고 상파울루에 가면 되는데, 거리가 가까우니 모두의 배려로 상파울루로 함께 갔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우리는 브라질의 극심한 교통체증을 알지 못했다. 아니 알았다고 해도 이렇게 심각한지 몰랐다. 일곱 명 출장자들이 돌아가는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정말 간신히 비행기를 탔다고 연락을 받았다. 어쨌든, 난 상파울루에 혼자 남겨졌다.
첫 일주일간 호텔과 연결되어있는 거점 사무실로 출근 하고, 퇴근 후에는 절대 외출하지 않았다. 브라질은 창살 없는 감옥처럼 위험한 나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주말인데, 월요일이 브라질 휴일이라는 말에 답답한 호텔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한숨을 쉬었다. 브라질 한국분들께 휴일 계획이 없다고 했더니 좋은 기회라면서 이과수에 꼭 가야 한다고 추천했다. 처음 들었는데, 큰 폭포가 있는 지역이라고 했다. 폭포 하면 ‘캐나다와 미국 접경지역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이아가라 폭포는 이과수 폭포에 비하면 그냥 오줌 줄기라고 한다. 함께 갈 사람이 없어서 검색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를 섭외했다. 항공권 발권은 내가 하고, 호텔과 이과수 1박 2일 가이드를 여행사에서 연결했다. 한국에서 이과수 폭포만 보러 브라질에 간다고 해도 돈 천만 원 이상 들 텐데, 1박 2일 동안 항공료까지 포함해서 약 1백 50만 원 정도 들었다. 인생 여행이 될 거라고 현지 직원들이 말하니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이과수에 도착했다.
1박 2일 동안 나의 가이드가 되어주실 분은 아르헨티나 교포 3세로, 예전에 MBC에서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 촬영 때 가이드였다고 했다. 아마존의 눈물을 보지는 못했지만, 왠지 든든했다. 가이드는 머리를 풀어헤친 숲에서 방금 뛰쳐나오신 것 같은 용모로 공항에 마중을 나오셨다. 첫날 아르헨티나 사이트에서, 두 번째 날은 브라질 사이트에서 악마의 목구멍이 있는 이과수 폭포 구경하기로 했다. 아르헨티나 사이트에서는 사람들과 함께 보트를 타고 폭포 안으로 들어가는 체험이었다. 우비를 입고 여러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함께 보트를 탔는데, 폭포위를 지날 때 물벼락을 맞았지만 재밌었다. 함께 온 사람들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하나보다 싶었다. 아르헨티나 사이트의 이과수 폭포 체험을 마치고 가이드님과 함께 현지 식당으로 저녁을 먹었다. 가이드는 나에게 모험을 하게 해 주겠다고 하면서 파라과이로 가겠다고 하셨다. 차에만 있으면 문제가 없다고 해서 넘어간 파라과이 국경의 풍경은 놀라웠다. 어두컴컴한 도시, 온 거리가 쓰레기가 날리고 길거리 곳곳에 총을 든 사람들이 캄캄한 곳을 돌아다녔다. 이것도 관광의 일종일까?
다음날은 드디어 브라질 사이트 쪽 이과수 폭포에 가는 날이었다. 관광객들이 워낙에 많아 분잡하지 않게 즐기려면 아침 일찍 나서야 했다. 전날 폭포에서 오돌오돌 떨었기 때문인지 친절한 가이드 아저씨는 자기 딸의 두꺼운 노란 잠바를 챙겨오셨다. 개표소에서 바로 표를 끊어 열차를 타고 ‘악마의 목구멍’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폭포수로 안개가 자욱한 폭포길 중앙에 놓인 나무 데크길을 뛰다시피 걸으며 신비한 기운에 감탄의 감탄을 했다. 나의 거친 숨소리와 거대한 폭포소리가 햇빛에 반사되는 멋진 곳이었다. ‘악마의 목구멍’에 도착했을 때는 입을 닫을 수 없을 정도였다. 엄청난 물줄기가 내리꽂히며 만들어 내는 거대한 소리가 마치 지옥의 입구, 악마의 목구멍처럼 느껴진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전체 이과수 폭포 수량의 절반 이상이 몰려있는 지점이라고 하니 엄청난 대자연 앞에서 경이감을 느꼈다. 거대한 물줄기들이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사이렌의 음악을 듣고 바다에 빠지는 선원들처럼 빠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기도 하니 조심하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감탄하고 악마의 목구멍을 들여다보고 셀카를 찍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진 찍어달라 부탁하는 동안 관광객들이 몰려왔다. 일찍 오길 잘 했다. 이과수에 오길 잘 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국경에 있는 아과수 폭포를 다녀온 후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의 폭포를 제외하고 폭포에 관련된 다른 장관은 시시해졌다. 웅장하다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이과수에 비하면 오줌 줄기라니 다른 폭포는 더 볼 게 없었다.
‘이과수 폭포 안 본 눈 삽니다’
그래서 아이와 여행을 다닐 때면 항상 이점을 염두에 둔다. 자극적인 경험은 아이의 다음 경험에 어떤 영향을 줄까. 한 번의 자극적인 경험으로 다음 세상이 시시해 보이면 어쩌지. 자극적인 경험이 많을수록 소소한 아름다움을 놓치는 ‘여행 고자’가 되면 어쩌지.
이런 걱정은 기우일 수 있다. 내가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건 가족과 한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일상의 소소함을 충분히 느끼게 하고 일상적인 경이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며 체험을 제공하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