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뒤죽박죽 세계여행기
2001년 덴마크 사람 예스를 처음 만난 후로 25년이 흘렀다. 첫 직장 고객으로 만나서 나의 삼촌, 친구, 그리고 산타클로스처럼 선물같은 사람으로 계속 남아 있는 예스 윌럼슨 (Jes Willumsen)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첫 회사를 그만뒀지만, 예스는 한국에 출장 올 일이 있으면 나를 꼭 만나고 간다. 내 동생이 먼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조카 선물까지 챙겨왔고, 일부러 한국 출장일정을 잡아 내 결혼식에 나비넥타이 턱시도를 입고와 주례보다 더 긴 축사를 30분간 해 주었다. 아이를 낳기 직전에 예스가 한국에 왔을 때는 임신 기간 태교로 그린 민화 작품을 선물해주었다. 아이를 낳고 몇 개월 후에도 한국으로 출장 오는 김에 우리 집에 방문해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최근 마지막으로 만난 건, 2017년 11월 태국에서 열린 예스의 두 번째 결혼식 때였다. 예스는 덴마크에서 고등학교 밴드부에서 첫 번째 아내 레나를 만나 졸업 전 아이가 태어나 결혼했고, 지금은 장성한 아들과 딸이 있다. 내가 덴마크에 갔던 2001년에 예스가 서른네 살 정도였는데 아들이 열여섯, 딸이 열네 살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하고 철학적이기까지 한 예스와는 달리 그의 아내 레나는 우울하고 숨어지냈다. 레나의 은둔자 성향을 예스는 항상 걱정하는 멋진 남편이었고, 어디를 가나 둘은 항상 손을 꼭 잡고 다니는 아름다운 부부였다.
예스가 어떤 식으로 재혼 이야기를 내게 꺼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태국 여성이라고 했다. 예스는 태국 여성을 한국으로 출장 왔을 때 한 번 마주쳤고, 페이스북을 통해서 다시 연결되었다가 마음이 깊어져 결혼하게 되었다고 했다. 태국 여성도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장성한 아들과 딸이 있었다. 자주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니므로 여러 해 동안 어떤 사건과 고민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나는 무조건 예스를 믿었다. 물론 예스에게 다른 여성이 생겨서 전 부인 레나오 이혼을 한 건 아니었다. 예스는 그동안 레나는 정신적으로도 많이 약했고, 병원 치료도 받고 있었다고 했는데, 이겨낼 것이라고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태국 결혼식에 우리 가족을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무조건 예스. 태국의 콘켄이라는 시골에서 식을 올리고 식후에는 가족이 끄라비로 여행할 예정인데, 우리 가족에게 숙소, 항공권을 모두 제공해주겠다고 했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외국 친구가 항공권과 숙소를 보내주며 초대하는 로망이 현실이 되었다.
태국 방콕에서 콘켄으로 가는 비행기 갈아타는 시간이 짧아 걱정했지만 우려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만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줄에서 아이가 똥을 바지에 한 바가지 쌌다. 기저귀를 뗀 지 얼마 안 되었기에 기저귀도 없었다. 남편은 빨리 화장실에서 수습하고 왔을 때 수속하는 줄에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기다리는 줄을 앞당겼다. 그런데 어떤 외국인이 우리에게 욕을 쏟아부었다. 어디를 가나 그런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지만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싸우지 않고 무사히 우리는 콘켄 가는 비행기를 탔다. 여전히 귀여운 할머니인 예스의 어머니와 2001년에 덴마크에서 3개월간 함께 살았던 그 당시에는 철없는 고등학생이었던 앤과도 반가운 재회를 했다. 콘켄은 지역 축제가 열리는 중이었고, 우리는 저녁 늦게 식사를 함께한 후 연못에 소원 연꽃을 띄웠다.
다음날 결혼식에서는 예스와 태국 신부가 태국 전통 옷을 입고 앞장서고, 우리는 집에서부터 결혼식장까지 덴마크 국기를 흔들면서 행진을 했다. 결혼식 자체가 축제였다. 피로연 때 세 살쯤이었던 나의 아이는 음악과 분위기에 신나서 현지 아이와 함께 춤을 추었다. 남편은 예스의 결혼 날이 생일이었는데 예스는 생일 케이크를 준비해 서프라이즈까지 해주었다.
콘켄에서 국내선을 타고 도착한 지상낙원 끄라비 비치에 갔다. 숙소 바로 앞으로 수영장이 연결되는 곳이었고, 수영장 안쪽으로는 Pool bar가 있었다. 끄라비 호핑 투어를 하며 아름다운 해변을 즐기려 했지만, 첫 해외여행이었던 아이에게는 무리였던지 온몸에 열이 끓기 시작했다. 숙소에 도착해서도 고열이 계속되어 방과 연결된 수영장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해열제 먹이고 나는 아이와 함께 있었는데, 남편은 예스의 태국 딸의 남자친구와 pool bar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숙소에 와 뻗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는 남편이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오니 그때가 꿈만 같았다. 예스와 그녀의 새 아내는 덴마크와 태국을 오가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두 번째 결혼의 삶이 예스가 원하던 삶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페이스북에는 둘의 애정이 여기저기 듬뿍 묻어나 있다. 활발하고 모험을 사랑하는 두 번째 아내는 온갖 맛있는 요리를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한다. 집 앞에는 자쿠지도 만들어서, 겨울 실외 사우나도 즐긴다. 무엇보다도 예스가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더욱더 행복해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다고 한다. 물론 전 부인 레나와 같은 마을에 살며 가끔 왕래도 한다고 했다. 그는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행로에서 스스로 삶을 선택했다.
예스의 새 가족들이 한국 제주도에 올 예정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취소된 후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다. 페이스북에 몇 년 전 오늘에 예스의 태국 결혼식 사진이 뜰 때면 세월을 실감하며 예스에게 메시지를 보내거나 영상통화를 건다.
뉴질랜드 오기 전 영상통화를 했다.
“JES! I MISS YOU SO MUCH! 우리 도대체 언제 만날 수 있는 걸까?”
“우리가 살아생전에 만날 수 있을까? 하하하”
산타클로스 수염을 하고 노년기 초입에 들어선 예스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다음 여행지는 북유럽이다. 동시에 예스와 예스의 아내에게 계속 한국으로 오라고 졸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