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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빛 Oct 17. 2020

07. 터전을 잃는다는 것

매장 폐업, 그리고 그 후


#7



강남 바 전경

" 영업은 10월 4일까지만 하기로 했다. "





강남에서 근무한지도 5년.

한 매장에서 오랜 시간을 근무하며 쌓인 모든 것들을 정리해야만 했다.

그것도 단 2주 안에.


코로나 사태로 매출은 계속 하락세였고, 기존에 오던 단골손님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매장을 리딩 하는 입장에서 이건 회사에서 계속 손해를 안고 가는 거라 생각했고 정리하는 게 낫지 않나? 싶었다. 회사의 시작점인 강남이 없어지는 건 정말 많은 고민들이 오간 후에 결정된 사실이지만, 막상 정말 없어지게 되었다고 전해 들으니 눈 앞이 캄캄하고 어지러웠다.


내가 정든 이 곳을 떠나 새로운 매장에 적응할 수 있을까?

나와 함께 일하던 팀원들이 다른 곳에서도 지금처럼 잘 해낼 수 있을까?

지금의 팀과 헤어지고 새롭게 팀을 구축할 수 있을까?


잘하고 싶은 마음에 모진 말을 하던 내 모습들이 스쳤고, 마치 이별하는 연인을 앞에 둔 것처럼 못해주고 못했던 것들만 계속 생각나 더 생각을 이어가는 게 힘들 지경이었다. 로테이션을 하는 회사라는 걸 나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팀원들도 잘 알았지만, 그간 맞춰온 것들을 떠올리니 아쉬움만 한가득. 매장이 없어진다는 사실보단 팀원들과 헤어진다는 사실이 더 슬펐던 2주였다.


*로테이션 : 한 회사 내에서 여러 개의 매장을 운영할 때, 여러 매장을 주기적으로 돌아가며 근무하는 시스템




사람들의 마지막 인사 보드

매장이 없어지기 이틀 전, 마지막으로 들러준 손님들이 꽤 있었다. 나보다 더 매장에 애착을 가지고 브랜드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매장이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음에 한껏 감사드리며.


짐 정리를 하면서 손님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까지 밀려왔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삐죽 대는 기분.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얼른 짐 싸고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했는데, 지금은 이 기분을 어떻게 떨쳐낼 수 있을지 막막하다.


삐죽 대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어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서두르지 않으면 시간 내에 정리하지 못할 거란 마음.




강남 매장 정리 중

일하던 곳이 없어지는 기분.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간 매장이 수없이 리뉴얼을 했지만, 정말 공중분해되는 건 처음이라 두려워졌다.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이 공간이 없어진다고? 정말 오늘이 지나면 끝이라고?

팀원들에게 그만 슬퍼하라고 말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나라도 강한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그래야 팀원들도 에너지를 잃지 않고 앞으로를 그려볼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슬픔을 거두고 잠시 멈춰 서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보기로 한다.


오마카세 커피 바는 어떡하지?

앞으로 나는 어떤 팀과 어떤 일을 하게 되지?

나는 이제 자유인가? 도비가 되는 건가?


나의 미래가 불확실해지자 불안감이 더 커졌다. 정해진 것 없이 그저 흐르는 대로 시간과 환경에 나를 맡겨야 한다는 게 쉽진 않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안정감을 느끼던 시간들의 끝에 다다르자 불안정한 시간들에 지레 겁먹은 내 모습을 보니 괜찮다고 했지만 역시 나는 괜찮지 않다는 게 확실해졌다. 물론, 또 굴하지 않고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잊어버릴 테지만.





때마침 휴가가 겹쳤다.

천만다행이랄까? 휴가 덕에 조금 덜 슬플 것 같다.


강남 매장은 2020년 10월 4일 그렇게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왔던 시간들. 그 역사 속에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정말 큰 경험을 했고, 앞으론 새로운 역사 속에 스며들 것이다.


매장이 없어지며 많은 것들을 잃었지만 그만큼 앞으로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새로운 매장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팀과 합을 맞춰볼 수 있게 되었고, 내 미래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들이 생겼다. 내가 원하는 게 어떤 건지 고민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건 엄청난 기회다.


나에게 희로애락을 모두 선사한 강남 매장.

그 안에서 얻은 값진 경험들은 앞으로의 내 인생에 또 다른 밑거름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생했어. 잘 가, 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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