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해서가 아니라 쪽팔려서 못했다.
그냥 평범하고 싶을뿐
청탁과 거래를 직간접적으로 많이 보고 들어온다.
부모를 앞세우는 이도 있고 친인척을 동원하는 자도 있다. 스스로 자신을 부탁하는 자들도 물론 있다.
이들처럼 하면 쉽고 편한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내가 청렴의 효시라서 그런 것은 더더욱 아니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이유는 쪽팔려서 이다.
나 하나 편하겠다고 기름칠을 하는 순간 내가 덜어낸 일은 누군가에게 더해지기 마련이다. 내가 쉽게 올라가면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누군가를 밀어내기 마련이다. 타인에게 보탬은 못되어도 민폐는 끼치지 않으려 살아왔고 살아간다. 이런 나만의 작은 원칙이 깨지면 너무 초라해지지 싶어 못하는 것이다.
능력에 걸맞지 않게 자리를 차지하면 사자 흉내 내야 한다. 실체는 하이에나이기에 얼마 있지도 않은 털을 곧추세워야 어울리지도 않는 사자 흉내를 내야한다. 과분한 자리는 결국 자신을 과대포장하기 마련이다. 없는 것을 있어 보이게 해야 하니 거짓은 일상이 된다. 보잘것없는 과거의 기억을 체계적으로 변조해 거창한 위인을 만들고야 만다. 추악한 늙다리들이 읊는 자신만의 위대한(?) 과거사처럼 말이다.
늙어감이 외면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다. 과대 포장이 군데군데 벗겨져 지저분한 실체가 드러남이 원인이다.
모두가 회피하는 노년을 살고 싶은 이는 없다. 내내 추하다 노년에 갑자기 빛이날 리도 만무하다. 사람은 절대 쉬이 변치 않는다.
평타는 유지하는 평범함이 묻어나는 인생 후반기를 위해 지킬 것은 지키려 한다. 뭐 대단한 게 있는 것은 아니다. 욕심을 버리고 쥐었던 손을 펴면서 덜어내는 연습이면 족하지 싶다. 이게 쪽팔리지 않게 살아가는 방법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