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아들에게 배우는 40대 아빠

비정상의 경계를 넘다.

by Aheajigi

아들은 독립기념관이라는 곳에 처음 왔다고 기분이 좋았는지 노래를 불렀다. "곰 세마리"


로마시대 검투사가 간간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슬픔은 없고 죽임에 열렬히 환호했을까' 때문에.

그 실마리를 얼마전에 찾았다. 어느 순간부터 급격하게 오디션 프로그램이 늘어났다. 오랜 연습생 기간을 견딘 사람들을 또 극한의 경쟁으로 몰아넣고는 방송으로 송출한다. 어려움을 이기고 힘겹게 선발되는 것이 스토리지만, 그 안에서 탈락하는 더 많은 사람들의 슬픔은 놓치고 있다.

오디션프로그램은 희망고문이자 좌절 방송이다.

하지만, 한심하게도 나 또한 그 방송을 보고 즐기고 있다.


"어째서 다수의 탈락자가 흘린 눈물에 주목하지 못했을까?"

"그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딸일텐데."


경쟁이 만연해서 이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 것인지 아무 생각없이 즐겼다. '국민프로듀서'라는 용어와 함께 시청자란 존재들의 오지랖은 하늘을 찔렀다.


참가자들의 삶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의 기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이들이 갖고 있는 발전 가능성이나 잠재적 재능을 제대로 알아볼 리 만무하다. 테스트는 심사하는 사람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뽑을 뿐이지 그것이 선발된 자들의 우월함이나 탈락한 이들의 미흡함을 확신할 수는 없다.


자극적이어야 눈길을 사로잡다 보니 드라마는 막장으로 치닫고 예능은 고통의 꼭대기로 내달린다. 시청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무뎌지기 때문에 점점 더 자극은 강해져가고 있다. 로마시대 노예 싸움질을 점점 잔혹하게 하는 것과 흡사했다.


소소한 일상에 즐거워하며 흥얼거리고 노래하는 아들이 훨씬 성숙하게 보인다.

난 한참을 즐기고서야 잘못됨을 인식했다. 언제쯤 어른이 되어 이런 비정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