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디딤판과 부자 디딤판

디딤판의 간극

by Aheajigi

부자?

내 주변에 부자는 없다. 계층이 다르니 당연한 일이다.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 봤다. 혹시 싶어 검색을 했더니 이름만 말하면 들어본 기업의 대표가 있다.

신기했다. 그가 대표란 사실이 아니라 내가 동창의 이름을 기억했단 사실이 말이다. 난 누군가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도 그렇다고 휴대폰에 저장하지도 않는다. 기록했던 이름도 지우는 마당에 내가 초등 동창의 이름을 기억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어릴 적 몇 번 어울리긴 했으나 친구라 말할 만큼 계속 관계를 이어오지는 않았다.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란 의미다. 같은 골목에 살았던 꼬맹이시절 동창일 뿐이다. 그 동창을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훤칠했고 매너가 좋았다.


사는 바운더리가 달라 점점 멀어졌을 뿐 멋진 녀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골목만 같았지 집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80년대 잘 모르는 수입차 그리고 운전기사와 가사일을 맞으신 아주머니, 넓은 잔디밭과 지하수를 뽑아 올린 분수까지 영화에서나 볼법한 광경을 놀러 간 그 집에서 보았다.


디딤돌의 다름. 이건 참 크다.

우린 살기 위한 노력이란 것을 한다. 누가 더 크고 작은지 비교할 수 없다.

부자 동창은 부자를 넘어 정치에 생각이 있는 모양이다. 난 다른 곳에 눈을 돌릴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 눈앞에 놓인 박봉 직장 생활만으로도 버겁다.

시기하거나 부러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디딤돌의 간극은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에 상당한 갭을 만들어주고 있음 논하는 것뿐이다.


해서 난 삶의 드라마틱한 도약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부자가 되려 과욕을 부렸다면 분명 무리수를 두었을 것이다. 조랑말이 아무리 훈련을 한다 해도 경주마와 경쟁에서 이길 길은 없다. 경주장에 들어가지 않으면 조랑말은 불행하거나 초라해지지 않는다. 가랑이가 찢어지거나 추하게 살고픈 생각이 없는 것이다.


디딤판의 간극이 초래할 삶의 차이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부자의 디딤판을 디딜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단지 가난의 디딤판에서 만큼은 비켜서 있는 삶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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