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인간 경주견이다.
본질을 보지 못하는 아둔함
자살률이 높다고 난리다. 그래서 정책이랍시고 나온 것은 자살예방 교육이란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에 대한 예방 책을 만든다면 이혼예방 교육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의 깊이가 한치를 넘지 못할까?"
아둔한 어른들의 근시안적이고도 겉핥기식의 설익은 사고가 불러온 정말 한심한 생각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지 싶다.
사람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일을 생각하고 실천으로 옮기기까지 참기 힘든 그들만의 고통과 어떤 진행의 흐름이 분명 있었을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를 일관된 패턴이나 일정한 현상처럼 관찰하여 사전에 찾아내고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스스로 자각하고 빠져나오는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살을 막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나 상담시스템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 또한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이를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아가야할 방향은 자살예방교육이 아닌 행복 교육이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 가까운 소소한 행복을 향유하는 방법을 우린 모른다.
루어(가짜미끼)를 향해 질주하는 경주견을 TV로 본적이 있다.. 먹이 냄새만 풍기는 미끼를 진짜 고기라 착각하고 경주견들은 내달린다고 한다. 개들이 그리 열심히 뛰는 이유는 굶주림이 만개해 배고픔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뛰어 겨우 미끼라는 목표를 물었을때 개들은 얼마나 허탈했을까?
"경주견이 측은한건 닮았기 때문이다."
우린 성취하고 도달하고 달성하는 목표지형적 삶을 살도록 양육되고 배워 왔다. 그래서 무언가를 이뤄야만 그것이 행복이라 착각하는 이들이 우리사회 상당수를 차지한다. 높은 지위를 올라서거나 남들보다 경제적으로 월등하기 위해 질주를 절대로 멈추지 못한다. 우린 인간 경주견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