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거울은 부모
군대라는 곳은 정말 인간시장이었다. 잘 나간다는 대학출신부터 중국집 배달원을 하는 전직 깡패까지 스팩트럼이 참 넓고도 다양했다. 여러 여자를 건드렸다는 참 위태로운 것들까지 보면서 어쩌자고 이런 것들과 한데 묶어 생활하게 만드는지 걱정스러웠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고참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것부터 계급장이 올라가면서 후임을 괴롭히는 고문관까지 그들의 낱낱을 가까이서 보다 보니 점점 더 가관이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학교라는 공간도 비슷하지 싶다. 그 작은 교실에서 20명 남짓한 녀석들이 복작거리니 말이다. 태어나서 자라온 환경이 각기 다른 아이들도 오만가지 생각이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할 때 여러 사람을 만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주로 교류하는 이들은 그렇게 이색적이지 않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보통 주활동무대가 기반이다. 나의 바운드리가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한 대목이다. 성년이 되면 사람을 가려서 만나는 선택을 하게 된다.
교실은 군대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다. 친하게 지내는 이들은 고르겠지만 억지스럽게 만나는 상황을 피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둥글둥글 원만하게 지내란 말은 피해야 할 이야기다. 선을 넘나드는 또래들과의 조우는 위험한 상황만 초래할 뿐이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거나 선악의 구분이 없이 무분별하게 행동한다면 가급적 멀리 떨어지도록 교육하는 일이 필요하다.
모든 상황에서 부모가 등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만일 부모가 상시 감시체제에 돌입한다면 아이는 숨이 막힐 것이다. 무엇보다 완벽하게 통제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 부모란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판단의 기준은 아이가 세워나가야 앞으로 발을 디딜 사회에서 온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말로 모든 것을 전달해 준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부모의 말뿐만 아니라 행동을 아이는 고스란히 배우고 자란다. 말만 번지르한 부모라면 자녀 또한 말만 앞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