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감정 얼뜨기 아빠다.
아들의 삶은 아빠와 다르기를.
잡지에 표시된 나라별 행복만족도 지표에서 우리나라가 어디쯤 있는지 찾아달란다. 8살 아들이 어떤것이 궁금했는지 몰랐다. "우리나라는 별로 행복하지 않데요. 난 더 많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들이 행복하다니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씁쓸한 뒷맛이 느껴졌다.
6년 뒤 아들을 위해서 학원을 보낸다는 일을 나도 하고 있다. 아들이 집으로 향하는 시간은 캄캄한 밤이다. 저녁도 밖에서 패스트푸드로 허기를 면하는 다른 아이들을 만들지 않으려 집밥을 손수 차려준다. 집에 돌아오면 미안함에 오늘도 고생했다 말해줄 뿐이다.
하숙방 주인과 부모의 유일한 차이는 생믈학적 동질성 뿐이다. 내가 아들을 아침에 나가고 저녁에 들어오는 것만 체킹하고 있을 줄이야.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라 바이블처럼 아들에게 설교한다. 그래서 난 얼마나 행복을 누리는가!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삼는 것이 행복이라 착각하는건 아닌지.
난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정을 분노 빼고는 잘 알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감정의 스팩트럼이 매우 좁거나 아니면 기쁨과 행복도 구분하지 못하는 감정얼뜨기다. 문제는 내가 아들도 행복을 모르는 사람으로 키울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틀린말은 아니다.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그 사회를 이루는 것은 결국 가정이다.
아무말도 하지 말고 쳐다보면 안다. 내 아들에게서 밝은 아우라가 보이는가를.
"힘들면 언제든지 편하게 말해. 그만 해도 괜찮아."
진심으로 말했는데 아들은 벌써 물들어 버렸나보다. 아빠의 말을 인생 낙오 쯤으로 생각했는지 앞으로 잘 살아야해서 멈출수 없단다.
비정상이 너무 많아 정상이 그릇된듯 비춰지는 잔인한 현실 속에서 바람막이가 되어줄 유일한 사람은 부모이건만, 제대로 버팀목을 하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