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생일은 어른들의 파티마냥 초대장을 받은 친구들만 입장이 가능하다. 장소도 생일인 아이의 집이 아닌 키즈카페나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진행되며 파티에 걸맞은 선물이 등장하는 give & take로 바뀌었다.
예전 생일잔치는 아이들끼리 서로 얼굴이라도 알고 지내거나 같은 반이라는 약간의 교집합만 있어도 얼마든지 어울릴 수 있는 이벤트였었다.
지금 생일파티는 아이가 참가하기 위해서는 우리 엄마가 엄마들 모임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 선행조건이 충족되어야 상당히 수월하다. 이 엄마들의 모임은 거주하는 동네나 주거 형태(아파트) 정보를 교환하며 경제적 수준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단다.
아이들 삶 속에 개입한 엄마라는 존재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방대해지면서 아이들의 계층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아빠들이 직접적으로 개입할 여지는 사실상 거의 없다.
내 아이라도 다르게 키워야 하건만 그걸 감당하는 것은 아빠인 내가 아니라 어린 아들이다. 자신도 친구 생일파티에 가보고 싶다며 울먹이는 것을 우리 부부도 외면하지 못했다. 결국 1학년 여름방학 즈음에 아내도 엄마 모임에 첫발을 내디뎠다.
'삶의 작은 파고에 흔들릴지언정 뒤짚히지 않는 것은 자연스레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 아이를 '온전하게 자라고 남들에게 기죽지 않게 하겠다.'는 부모들의 욕심이 자녀가 겪어야 할 경험들을 철저하게 검열하고 있는 것이었다. 살면서 겪고 배워야 할 & 때로는 상처 입고 울음을 터트리면서 조금씩 성장해하고 단단해져 가는 경험의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는 의미임을 모르지는 않았다.
비싼 돈과 공을 들여 아이들을 망치는 것은 아닌지 얼렁뚱땅 아빠의 시선에서는 걱정스러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