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2학년 때 데리러 간 적이 있었다. 친구와 딱지치기를 한다기에 벤치에 앉아서 기다렸다. 아들은 내 앞에서 같은 반 친구로 보이는 아이와 딱지치기를 했다.
뭐라 서로 말을 하더니 규칙을 정한 듯 보였다. 그래봐야 딱지는 넘기는 게 이기는 것은 변치 않는 진리였기에 가만히 지켜봤다.
잠깐 주위를 둘러보다 다시 아들이 놀고 있는 곳을 응시했다. 아들의 표정이 묘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그렇지 않았다. 분명 당황한 모습이었다. 가만히 노는 것을 보면서 아들이 요상한 표정을 짓는 원인을 찾았다. 20여분의 딱지놀이가 끝나고 아들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아들? 같은 반에 친구 많아?"
"응"
아들은 아직 당황한 표정이 지워지지 않았다.
"모두와 친하게 지내지 않아도 괜찮아!"
아들은 눈을 깜빡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아빠도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내지는 않아. 마음이 불편하면 조금 멀리해도 돼."
"정말?"
아들과 같이 딱지를 쳤던 또래는 계속 자기 딱지가 뒤집어지면 반칙이나 무효라고 말하면서 규칙을 끊임없이 바꿨다.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정해진 룰을 깨는 아이였던 것이었다.
교사라는 직업은 안타깝게도 아이들을 너무 많이 겪게 된다. 그 아이가 어찌 자랄지 장담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이런 부류의 아이들이 어떤 분쟁을 일으킬지 수많은 경우의 수를 단정 짓는다. 아들이 그 아이와 계속 어울리게 되면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는 계산이 서버린 것이었다.
이제까지 모두와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아들의 믿음을 아빠가 깨버렸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본인이 그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거니와 모든 것을 양보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난 아들을 성직자 같은 천사로 키을 생각은 없었다.
아들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마음 맞는 사람과는 가까이 지내고 불편한 사이는 조금 멀리 지낼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누군가를 배격하거나 소외시키는 일에 동참하는 것에 대해서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라 절대 안 됨을 분명허게 주지시킨다. 동시에 누군가로부터 내 아들이 상처를 받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도 반드시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들에게 알려주는 것들이 맞는지 틀린지 아직도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철없는 아빠가 언제쯤 철이 들어 얼렁뚱땅에서 벗어날지 모르겠다. 아들은 이제 7년 뒤면 20세 성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