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로 받을 수 있는 기쁨은 한계에 봉착하거나 무한히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얼렁뚱땅 아빠였던 나는 미처 몰랐다.
아들이 집어드는 장난감의 크기는 갈수록 커졌지만 환한 웃음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마트 장난감이 자주 바뀌지도 않았기에 갈수록 아들은 장난감에 시큰둥해졌다. 장난감 선물로 줄 수 있는 기쁨의 임계점에 이른 것이었다.
장난감보다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생각을 바꿨다. 당장의 함박 웃음보다 아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일들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저수지 오리배, 동물원, 박물관, 아담한 놀이동산으로 주중 오후와 주말을 가리지 않고 아들과 다녔다.
자연스레 아들과 대화가 늘어났다. 요즘 무슨 일들이 아들 주변에서 일어나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어떤 것에 관심을 보이는지도 알았다. 물어오는 수많은 아들의 질문과 아빠의 대답 속에서 마음의 거리가 줄어든다 싶었다.아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아들에게 자주줄 수 있는 선물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