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포자기

어차피 가난할 텐데

by Aheajigi

계층에 따라 대학 졸업장이 상당한 차이가 나는 소득으로 이어지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똑같은 서울대를 졸업한다 해도 계층에 따른 취업문은 분명 다르며 연봉 차이도 있다.


그렇다고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공부 이외에 가난 탈출을 위해 할 수 있는 마땅한 방안은 사실상 드물다. 초기자본 없이 근로소득 이외의 수익원을 찾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예외를 찾으려면 물론 있을 테지만 그것을 일반적 사례에 끌어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매우 특별하고 희귀한 상황일 테니 말이다.


'어차피 가난할 것을 뭐 하러 공부하나!'

이건 자포자기를 위한 손쉬운 변명거리다. 별로 고심하지 않아도 되는 매우 손쉬운 논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가난하지 않았다면 공부를 잘했을까?'

이에 대한 확답도 못할 테니 말이다.


가난을 끼고 산다면 분명 공부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산적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에 손을 놓는 것이 당당한 이유는 될 수 없다.


공부를 포기했다면 무기력한 삶을 항변할 필요는 없다. 그 변명에 관심을 가질 이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놓아버린 삶에 최대 희생자는 바로 자신이란 사실은 알지 모르겠다.


사회는 냉혹한 경쟁사회고 학력은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하는 객관적 지표로 활용된다. 자신을 증빙할 것이 없다면 받아줄 곳은 없다. 입장 바꿔 당신이 고용주라면 열심히 한다는 말만 믿고 채용을 하겠는가?


인생을 변화시킬 여러 지렛대가 있을 테지만, 취업과 직결되는 학력을 포기하면 생계가 위태롭기 마련이다.

아슬아슬한 삶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공부는 필수조건 중 하나이다. 뇌의 기능적 문제가 아니라면 공부 포기는 나태함과 불성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부를 잘하는 것에 방점을 두는 의미는 아니다. 끝까지 버텨보는 것이 핵심이다.

지방 이름 모를 전문대학을 다니던 녀석이 연락을 해왔고 응원이 필요한 듯 싶어 일식집에서 밥을 사주며 잘하고 있다 한 마디 건넸다. 졸업과 동시에 서울로 취업했다 메시지를 보내왔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난은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노력을 다했다 싶다. 내려놓는 일만은 하지 않는다면 가난에서 조금씩 멀어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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