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이 아닌 당연함이 되기를
후원자님은 어떤 변화가 있으셨나요?
얼마 전 한통의 메시지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글을 쓴다고 끄적이면서도 편지 한 통을 못 쓰고 있는 까닭은 지나온 13년 되감기를 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내 아들이 잘 태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누군가를 꼭 돕겠다고 행운과 보이지 않는 거래를 했었다. 건강하게 아들이 태어났고 난 약속처럼 아들과 동갑내기 두 명의 아이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나라 이름도 생소한 말라위 아이들을 택한 이유는 아프리카 최빈국이었기 때문이었다. 빈곤과 불행이 일상일 것 같아서였다. 얼마 안 되는 3만 원으로 학교도 갈 수 있고 가족의 생활에 보탬이 되는 당연한 평범함을 향유할 수 있다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두 아이 매월 6만 원씩 후원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연 1회 사진으로 보내주어 이따금씩 '다행스레 잘 자라네' 안심했다. 자동이체로 돈이 빠져나가다 보니 차츰 이 아이들에 대한 생각은 무딤에 덮였다. 말라위 두 아이들이 잘 지내는 것은 내 아들이 크듯 당연한 일처럼 무의식으로 밀어냈다. 내가 바라던 방향이기도 했고.
올해도 연례행사처럼 오는 성장 사진과 상투적 감사인사 문구의 글이겠지 했다. 말라위 한 아이가 편지 말미에 나의 후원을 통해 자신은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할 수 있어 감사하다며 "후원자님은 나를 후원하면서 어떤 변화가 있으셨나요?"라고 물어왔다.
"13년간 내가 달라진 게 뭘까?"
아직도 그 아이의 질문에 답을 못하고 있다.
"후원이 감사함이 아닌 당연함처럼 되었으면 싶었던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아들처럼 앞으로도 무탈하게 잘 자라기를 바랄 뿐이었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성장하는 내내 당연한 것처럼 생활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길 바랐고 그래서 13년 후원은 한번도 끊이지 않았다. 내가 건네는 작은 돈은 그 아이에게 존재감 자체가 없기를 원했다. 살면서 생명을 유지하는 공기의 감사함을 거의 모르듯 끼니를 걱정하지 않고 학교를 다니는 일이 지극히 평범해졌으면 싶었다. 감사함의 편지가 점점 더 상투적으로 바뀌었으면 했다. 내가 돕는 위치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대단해서가 아니라 운 좋게 이 나라에서 태어나는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행운을 아주 미미하게 나누는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감사를 받을 일이 절대 아니다.
말라위 아이가 생을 걱정하지 않는 삶이 감사함이 아닌 당연함처럼 의식에서 멀어지는 시기가 빨리 오길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