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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상사를 데면데면 대하는 이유

드러난 본심

by Aheajigi

아들 팔에 감각이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4시간여 만에 손가락 끝에 감각이 들아옴과 동시에 통증을 호소한다. 다행이다 싶어 그때 직장 관리자에게 명일 연가를 내겠다 통화했다. 뭘 기대하던 아니나 그쪽 반응은 이러했다.

"일 처리하기 힘드네."

4시 언저리에 전화해서 내일 나를 대신할 강사를 구하기 빠듯하다는 의미였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기분이 나쁘거나 상처를 받지는 않았다. 이러한 그들의 태도가 내게 그들을 데면데면하게 대하는 원인이겠구나 생각했다.


직장 상사란 부류들이 모두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닐 테지만 상당히 많이 겪었기에 낯설지도 않다. 그들도 자녀가 있고 수많은 학생들을 겪었을 텐데 한결같이 이들의 공통점은 역지사지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 또한 내 아들만 걱정할 뿐 직장에서 일어날 일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나의 부재에 대해 뒤처리를 하는 것은 관리자랍시고 으스대는 그들의 업무이자 책임이기 때문이다.


폐농양으로 내가 입원했을 때도 교육감 앞에서 프레지 강의를 해달라는 웃기지도 않는 장학사란 이가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그 자는 나의 퇴원일을 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필요한 날짜에 강의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입원하다 말고 나가란 것인지 정말 의아했다. 몇 번을 재차 요구해 오기에 난 못하겠다 거절해 버렸다. 그 이후로 난 돈 한 푼 받지 못하거나 얼마 되지도 않는 푼돈 강의를 깨끗하게 거절해 버렸다. 그들에게 난 필요할 때 이용해 먹는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란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자리차지한 이들이 거리낌 없이 본심을 드러내듯 난 그들을 데면데면하게 대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 부류들은 내가 불편해야 말을 걸어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들에게 배려나 말조심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이 지껄이는 한심한 소리에 내가 거슬리는 일이 발생하는 일을 미연에 방지코자 함일뿐이다.


경우 없는 이들을 상대하고자 한다면 거리를 둠이 가장 현명한 처사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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