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나의 요리 실력은 전혀 좋지 않다.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감각이 남다르지도 못하다. 음식에 재주가 있었다면 직업이 바뀌었을 것이다. 난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해 칼을 잡은 것이 손에 익었을 뿐이다. 정말 어쭙잖게 음식 만들기 흉내만 낼뿐이다. 부모님께서는 맞벌이하시다 보니 3살 터울 동생 끼니를 챙겨야 했다. 냉장고를 열어 반찬만 내어 먹던 것이 조금씩 가스 불에 무엇인가를 올리기 시작했다. 내게 음식이란 살기 위한 본능에서 비롯되었다.
아내의 산후조리는 참 기가 막혔다. 임산부의 어설픔을 도와주었으면 싶어 고용했던 이는 본인 몸조리를 하고 가셨다. 모유 수유를 해야 했던 아내에게는 콩나물국을 주고 정작 자신은 내가 서너 시간 끓여서 만들어둔 양지육수로 미역국을 끓여 드셨으니 말이다. 냉장고에 식재료로 넣어 두었던 통삼겹살도 아내가 먹은 기억이 없다는데 행방이 묘연했다. 뭐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분이 잘 드시네라며 그냥 그리 넘어갔다. 그달 평균 식비보다 20만 원이 더 지출된 것은 산후조리를 부탁했던 그녀가 떠나고야 알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사도우미를 모셨다. 아내가 마주한 가사도우미는 70세가 훌쩍 넘으신 할머니셨다. 결국 아내는 가사도우미의 점심까지 챙겨드렸다 했다. 이래저래 도움을 얻고자 모셨던 분들과 뭔가 잘 맞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칼을 들 수밖에 없었다. 국을 끓였고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주중은 일에 치여 바쁘다 보니 주말에 몰아서 만들었다. 그렇게 주말마다 만든 반찬이 대략 10가지 남짓이었다. 양에 초점을 두다 보니 맛은 아리송했다. 그럭저럭 먹어주는 아내 덕분에 계속 만들었다는 사실은 아들이 내가 만든 반찬을 먹으며 냉혹한 평가를 내리기 시작할 때까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후다닥 음식을 만들어내기에 그럭저럭 내가 요리하기를 좋아하나 했다. 아내와 아들 없이 끼니를 때워야 하면 난 음식 만드는 것은 고사하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도 꺼내먹지 않았다. 귀찮기에 라면이나 빵으로 대충 허기를 면했다. 그제야 알았다. 난 요리를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가족 음식 챙겨주는 일을 즐겨왔던 것이다.
오늘은 아들이 입원한 병원으로 삼겹살 김치 볶은밥과 수비드 찹스테이크, 그리고 어묵탕을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