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속내
사람의 생각은 쉽게 변한다. 그에 상응하리만치 마음은 간사하다. 그래서 특정 시점의 발언이나 기억으로 그 이후의 행동을 이어나가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그때 그랬을지라도 언제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발령 첫해에는 방힉중에 아이들이 자취방까지 찾아왔다. 손수 점심을 해서 먹였더니 한숨 자겠다 하여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는 이런 오해를 살 여지가 있는 일은 절대 일으키지 않는다. 나만의 바운더리에 모르는 이의 물리적 & 정신적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아침을 굶거나 엉망으로 먹어 복통에 시달리는 녀석에게 아침 도시락 셔틀을 가르치는 해 내내 했었다. 이 또한 하지 않는다. 행여나 아이가 내가 건넨 음식으로 인해 식중독이라도 걸리게 될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들이 아침을 먹고 다니는지 절대 묻지 않는다. 행여나 나의 오지랖이 위험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 간에 장난이 있었고 그런가 했다. 피해 입은 집에서 아이 팔뚝에 멍이 들었다는 메시지가 왔다. 양쪽에 직접 연락해서 잘 마무리하긴 했으나 이 또한 매번 이리 끝나지 않기에 조심스럽기만 하다.
상대를 물어뜯은 아이 양육자는 내게 당신의 자녀를 따끔하게 혼내 달라 신다.
따끔이 어느 강도인지도 알 수 없을뿐더러 행여나 진짜 액션을 취했다가는 서운함에 그 화살을 내게 돌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싶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민망함에 따끔하게 혼내라 언급했겠지만 그 기억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엊그제 먹은 점심 메뉴가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흡사할 뿐이다. 이 아이는 내가 어렵지 않다. 무릎에 올라타 신난다고 춤을 추듯 날뛰는 아이다. 참다가 이 장면을 엄마한테 보인다 말하며 사진 찍는 흉내를 내야 하던 장난을 멈춘다. 이런 9살 꼬맹이에게 따끔은 통할리도 없다.
아이들 속내도 그 뒤에 있는 양육자들 속내도 알 길은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다채로운 상황이 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출근하지 않는 오늘 같은 주말이 평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