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이들

저리 늙지는 말아야지.

by Aheajigi

아들이 초등학교 중학년일 때 제주 4.3 기념관을 방문했다.

나이 지긋한 이들 몇 명 외에 우리 가족뿐이었다.


그곳은 제주 4.3 사건의 전말을 고스란히 알 수 있도록 원인부터 비극으로 치닫는 결말까지 다양한 자료로 보여주었다. 아들은 궁금했는지 이것저것 물었고 나와 아내는 배운 것과 기념관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아이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아들이 문득 이승만이란 사람은 어떤 대통령이냐 물었다. 이런저런 설명 끝에 정치깡패 동원한 부정선거로 쫓겨난 독재자라 했다. 지금 포털 검색창만 입력해도 내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답이 나온다.

내 아들에게 들려준 나의 역사관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나이 든 무리 중 한 명이 우리 가족 들으라는 듯이 "그래도 이승만이 정치는 잘했지."라고 큰 소리로 떠들며 나의 말을 간접적으로 막으려 했다.


정말 이승만이 정치를 잘했다면 어째서 북한의 도발 징후도 알아채지 못했으며 미국과 그토록 친한 척을 다했으면서 미군에게 흔해빠진 전차나 전투기조차도 원조받지 못했을까? 전쟁이 발발해서 우리가 북한군에게 밀리는 상황이라면 적어도 피난을 떠나라는 시그널은 빨리 알렸어야 했지 않나. 그도 불가피했다 치면 피난민 가득한 철교를 폭파하는 무자비한 짓거리는 일으키지 않았어야 하지 않나. 참 온갖 할 말이 많았으나 그 늙은 자들의 무례를 똑같이 되갚는 한심한 아빠로 아들의 기억에 남고픈 생각은 없어 참았다.


그들의 역사관을 뜯어고칠 생각은 없다. 근거 없는 망상일지언정 그건 그가 나름 신봉하는 진실일 테니 오류 투성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빌미로 갈등을 초래함은 무지일 뿐이니 말이다.

세상을 살아도 나보다 훨씬 더 진하게 체득했을 텐데 어쩌면 그리도 생각의 깊이가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이며 기본적인 예의란 개한테나 줘버린 한심한 수준인지 한숨만 나왔다.

결례를 저리도 당당히 할 수 있음은 부끄러움을 모르기에 가능한 일이지 싶었다.


나잇값은 시간이 자연스레 안겨주는 선물은 아닌 것이 분명함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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