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지난 일인데 타격감이 없지는 않네.
난 싫은 티를 숨기지 못하는 타입이다. 얼굴을 구긴다는 의미는 아니다. 원만히 지내는 이들에게는 먼저 가볍게 말을 걸지만 아니다 싶은 이들과는 어지간해서 말을 섞지 않는다. 먼저 상대 쪽에서 말을 건넸다면 최소한의 대답만 한다.
돌려 말하지도 않는다. 직장은 친목이나 도모하는 집단이 아니다. 업무라면 불필요한 수사를 붙이는 것을 질색하는 편이다. 그래서 난 종종 상당히 공격적인 인물로 묘사당함을 모르지 않는다.
오늘 코로나 시기에 같이 고생했던 동직종 후배를 만났다. 개인적 사정으로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1년간 쉬고 있기에 괜찮다 다독여주려 점심과 티타임을 함께 했다. 가벼운 수다 끝에 잊었던 과거사를 직시할 것이라 생각지도 못했다.
후배는 그 시절 나에 대한 소문을 참 상세히도 알려주었다. 피식 웃으며 대강 눈치는 채고 있었다 했지만, 개차반이었던 늙은 자들의 만행은 도무지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가 없다 싶었다.
코로나 창궐로 원격 수업에 들어간다 했고 그 방법을 놓고 회의는 길어졌다. 학년을 대표하는 자리를 떠나 최악의 상황에서 그래도 가르치는 모습을 보이는 게 교사가 아니겠냐 해서 원격 화상 수업을 난 하겠다고 했다. 나보다 한참 경력이 많았던 두 늙은이들께서 같이 하리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문제는 자신들만 쉬운 방법을 택하면 그만인 것을 가장 편한 방법으로 하자며 남은 두 젊은 후배들을 꼬셨고 엄마뻘 되는 이들의 말을 거스르지 못했던 그들도 같은 길을 따랐다.
거기서 끝났다면 좋았으련만 교장과 대학 동기라는 무기를 들고 내게 압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학년 부장 회의를 소집하더니 온라인 수업은 모든 교사가 같은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일방적 통보가 교장의 입을 빌려 나왔다. 이를 뒷받침한다는 옹색한 논리는 한 명만 튀면 나머지 모두가 좋지 않는 소리를 외부로부터 들을 수 있다였다. 이 고급진 개소리에 모두 조용했으나 그 침묵을 깨고 난 단 한마디로 일갈해 버렸다.
"지금 우리 학교는 교육을 하양 평준화하지는 말씀이신가요?"
난 내 길을 갈 테니 막지 말라는 의미는 그 자리에 있던 모두 알아챘다.
두 늙은이의 한심한 작태를 보고 있기 힘들어 난 그들과 모이는 자리를 피했다. 코로나 시기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한가로이 차를 마시며 잡담으로 보낸 그 시간에 난 등교때와 똑같은 일정으로 시간표에 맞추어 수업을 진행했다.
한심한 늙은이들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나를 반독재자처럼 몰아가며 학교 내에 소문을 퍼트렸었나 보다.
이듬해 내가 그들을 피해 다른 학년으로 올라갔을 때 나를 마주할 그들은 비상이었단다. 오늘 만났던 그 후배는 내가 화내지 않게 가급적으로 맞춰주는 방향으로 가자며 사전에 모의를 했었단다. 두 늙은이들이 나를 버럭이로 만들음을 이제야 알았다.
근데 막상 겪어보니 이런저런 방식을 권할 뿐 강요하지 않아 너무 좋았다 했다.
타교에 근무하면서 생각난다며 내게 먼저 연락을 했던 이유도 다채로운 병으로 병원과 친해진다 하니 망고까지 보낸 까닭도 그 연장선이었구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잘못은 두 늙은이께서 하셨으면서 장작 나쁜 놈은 나를 만드시느라 참 애들 쓰셨겠다 웃으며 넘겼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저리 늙어서도 몰염치하니 한심스럽다 싶었다. 당신들의 잘못은 감추고 아등바등 애쓰는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못된 자로 만드는 수작질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세상살이 흘러가다 보면 나처럼 정상과 비정상이 뒤바뀌는 억울함을 당하는 일이 왕왕 발생한다. 어른의 탈을 쓰고 징징거리는 코흘리개 마인드로 무장하니 그런 상황은 맞대응하기에는 수준이 맞지 않아 쪽팔리고 모른 척하고 있자니 나만 억울하게 손해를 보는 것으로 귀결될 때는 정말 열이 받기 마련이다.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해결책은 물론 없다. 그렇지만 나라는 존재를 겪고 한심한 반대편을 겪으면서 주변인들이 직접 체득하며 서서히 해결되기는 한다. 단 오랜 시일이 소요되는 방법이라는 것이 치명적 약점이다.
후배는 종종 연락드리겠다며 즐겁게 헤어졌지만, 한동안 잊고 지낸 늙은이 둘의 모습이 떠올라 평온했던 마음이 들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