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풍이라 넘길 일은 아니다.
어쩌다 부모는 넘친다. 나 또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양육받아온 경험을 내림하는 꼴로는 미흡한 부모란 굴레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함을 알면서도 말이다.
난 그런 한심한 부모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싶다면 그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정말 괜찮은 부모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부족함을 자각하지 못하는 고집불통 부모이거나!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지닌 부모라면 배우자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녀와 활발한 소통 및 정서적 유대가 올바르게 형성되어있을 것이다. 크고 작은 분란이 빈번하거나 가족 간 단절이 있다면 함량 미달이 분명하다. 누구 탓으로 돌리는 핑계가 턱까지 차올랐다면 미흡함에 대한 주제파악을 못하고 있는 부모란 명확한 반증이다.
예절교육을 가장한 이전세대 추앙 강요가 꼰대라는 두 글자로 튕겨지는 이유 중 한 가지는 자질부족 기성세대에 있다. 그런 어른 아래에서 자라난 새로운 세대가 멀쩡하기를 기대한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어쩌다 부모들은 학생을 키우는 현재의 부모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중년층에 양육자였던 노년층 또한 다르지 않다.
예절을 그리 입에 달고 살면서 당신들의 예에 대한 언행은 낙제 수준이다. 광화문에 수많은 태극기를 흔들며 거친 폭언을 내뱉는 주름 자글자글한 이들의 모습에서 어른의 모습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생각이 다르고 주장하는 바가 있다면 논리에 맞게 차근차근 말하는 모습이 있었어야 했다.
젊은 세대들의 싸가지를 논하기 전에 어른으로서 다음 세대를 품는 아량과 배려를 스스로가 탑재하고 있는지는 점검하는 자기반성이란 게 있었으면 싶은 안타까움이 든다.
모두들 함량 미달인 어쩌다 부모(어른)가 되어서 자녀를 양육하고 있으니 잘 자라나는 세대들이 내 눈에는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내가 받아온 양육환경이 안정적이기 보다 고통에 가까웠다면 라떼 타령이 아니라 바꿨어야 했다. 정말 괜찮은 부모이고자 했다면 부모의 역할에 대해 배우고 익혀 자녀 교육에 반영했어야만 한다. 내 주관에 따라 자의적으로 양육함은 불합리하게 받아온 양육환경의 재탕일 뿐이다. 올바르고 좋은 양육을 모르는 이가 자기반성도 없이 어떤 양육 작태를 보일지는 안 봐도 훤하지 않은가!
제정신은 젊거나 어린아이가 아니라 그들을 기르고 있는 부모가 먼저 차려야 한다. 가해자 부모가 피해자 부모보다 더 난리를 치는 기가 막힌 일들의 빈번함은 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개부모 밑에서 모범자녀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망상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