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아들은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다. 아내나 나는 직업적 특징상 말을 많이 할 뿐 외향적인 성격이 전혀 아니다.
해마다 바뀌는 아이들과 직원들을 스무 해 넘게 대하다 보니 누군가와의 대면이 이제는 덤덤하지만, 난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 상당한 부담스러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초면에 반가움을 표하다니!'
사람 대하는 것이 너무나 쉬워 보이는 주변인들을 간혹 보면 너무 부럽고 신기했을 정도였다.
아들도 아빠의 어릴 적 성향과 다르지 않았다. 아들 말로는 '난 유치원에 친구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아침이면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칭얼거렸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되었다. 고심 끝에 유치원에 데려다주면서 딱 한 가지만 오늘 말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친구야! 나랑 놀래?"
6개월 넘게 아침마다 이 말을 반복했다. 9월 무렵 아들이 퇴원해서 신나게 흥을 거린다. 오늘 친구를 5명이나 만들었다고 했다. 아들이 친구라 생각한 기준은 '친구야 나랑 놀래?'란 물음에 '그래'라고 대답한 같은 반 아이들의 수였다.
270일 만에 '친구야 나랑 놀래?'를 용기 내어 말했던 것이었다. '그래'라고 대답한 친구가 다섯 명뿐이었던 까닭은 아들이 그 말을 딱 다섯 번만 했기 때문이란다. ㅋㅋㅋ
다행스럽게도 올망졸망 7살 아이들은 같이 놀자는 말에 거부감이 없었다. 유치원 내내 아들이 같이 놀자 할 때 싫다고 반응한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들도 같이 놀자는 말을 남발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많으면 다섯 명에서 적으면 두 명 정도.
학교나 직장 생활 적응에서 초기 어려움을 겪는 것은 관계설정 문제이다. 어울릴 사람이 없이는 탁월한 학습능력이나 월등한 업무 능력이 본인에게 평온한 안정감을 절대로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속감이 없이는 학교도 직장도 버티기 힘들기 마련이다.
난 7살 때 누군가에게 아들처럼 용기 내어 말한 적이 거의 없다. 말을 걸어오면 대답하고 그렇게 조금씩 누군가와 거리를 좁혔기 때문이다. 7세 아들은 7세 때 아빠 보다 적응력이 월등했다.
이후로 아들은 낯선 또래들 사이에서도 금방 친구를 만든다. 아들과 둘만의 제주여행에서도 잠깐 백사장에 텐트를 펼친 사이 아들이 시야에서 사라져 깜짝 놀란적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그때 저 멀리 어떤 가족들 사이에서 아들로 보이는 꼬맹이가 보였다. 두 아이를 데려온 아줌마 옆에 있는 아들은 마치 그 가족의 일행처럼 보였었다.
'이렇게 넋살이 좋을 줄이야.'
그때 이후로 새 학기가 되어도 아들의 학교생활을 걱정한 적은 없었다. 새 친구에 대한 스트레스도 거의 없어 보였다. 아들은 고맙게도 누군가와의 관계를 잘 형성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