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폭력서클 3개. 나의 중학교 시절이다. 학교에서는 단속한다 했지만 또래들 돈 갈취부터 폭력까지 계속 이어졌다.
내 아들이 중학교를 갈 것이라는 불안함은 과거의 암울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교폭력 사안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이런 걱정이 기우만은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대학시절 긴 통학거리로 오전에는 졸음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중간고사가 다가왔고 같은과 동기에게 노트를 빌렸다. 복사한 종이를 외워가며 첫 시험을 준비했고 결과는 폭망이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노트를 빌렸던 동기의 학점은 A+인데 내 학점은 B-였던 이유를 말이다. 그 동기는 대여용 노트와 본인이 공부하는 노트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카피한 공책에서 키워드는 모두 빠져 있었다.) 제대로 강의를 듣지 않은 내 탓이 가장 크기에 뭐라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뒷맛은 참 진하게 씁쓸했다. 경쟁이란 게 어떤 것인지 그 동기로부터 호되게 몸으로 배웠다.
대안학교라는 곳을 가보았다. 소수의 인원과 괜찮은 시설이었다.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졸업을 하기에 적어도 또래끼리 날을 세우고 공부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기숙학교였기에 너무 어린 시절부터 따로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성장할 때마다 넌지시 대안학교를 말해보았다. 매일 밤 잠자기 전 '엄마 안아줘요.'를 연발하는 아들에게 기숙학교는 절대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치열한 경쟁이 주는 상처는 점점 더 크고 깊음을 체감했기에 정말 하고픈 것에 아들이 열정을 쏟을 수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딴에는 아들 진학플랜 B를 생각해 두었던 것이었다. 아들은 지금 친구들이 많아서 중학교도 좋다고는 하지만 과연 주변인들이 언제까지 친구로 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첫 시험 결과가 어찌 되었던 아들이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약육강식'의 먹이 피라미드 사회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아들에게 말하기는 싫었는데 결국 그 판에 발을 딛게 만들었다.
"오늘도 고생했다."는 말밖에 달리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참 초라한 아빠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