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교사가 되지 않으려 한다.

권위는 공포로부터 풍겨지는 게 아니다.

by Aheajigi


"엄하게 해야 학생들이 말을 잘 듣는다."

경력이 실력이라 착각한, 스스로 이런 말이 대단한 오판인지 조차도 판별하지 못하는 질 낮은 수준의 앞선 자들이 내게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한 말이었다.

그래서일까,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자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절대로 이러고 싶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는 대다수는 엄하다는 사전적 의미조차 모른다. 무섭다와 엄하다를 동의어처럼 혼용하는 부류들이었기에 답답한 존재들일뿐이었다.

우습게도 정작 이런 교사들은 상급자가 타이트하게 규칙을 강요하거나 강압적으로 일을 추진하면 입에 거품을 물도록 험담을 한다.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학생들도 똑같은 불만이 있을 것이란 사실은 전혀 괘념치 않는 철면피 들이다. 나로서는 이해해보려 애를 써도 이해의 실마리를 찾기 불가능한 대상들이었다.


이들과 다르고 싶다 하여 물렁한 교사가 되고픈 건 아니었다. 이건 방관이나 방치를 뜻하기 때문이었다. 현재는 민원 폭증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졌을 뿐. 이를 제외하면 이전에 해왔던 것들을 조심스레 진행은 하고 있다.


교실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고 학생들을 공포로 짓누르는 건 가르치는 입장에서 단지 편하기 위함이 유일한 이유이다. 그들은 이런 압박이 학습에 도움이 된다고 신념인 양 추앙하지만 조금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된다.

사람은 공포를 느끼면 이성이 마비된다. 위협을 직감하는 순간 누구나 본능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다. 해서 바짝 긴장하면 우린 머릿속은 하얗게 변한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오로지 도피 내지는 회피 본능만 작동하는 까닭이다.

학습은 본능의 영역이 아닌 이성의 뇌가 담당한다. 공포로 이성을 마비시키고 이성이 필요한 학습을 시킨다는 건 궤변이다.

생각을 키워야 하는데 사고를 멈추게 만들기에 난 적어도 교실에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억지 주장을 할 때 목소리 톤이 올라가는 건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가끔 높아져 계속 신경을 쓰고는 있다.)


막연한 칭찬을 아이들에게 하거나 살갑게 다가서지도 않는다. 잘한 것에 대해 인정해 주고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학급 일을 진행하여 학생들의 의사가 최대한 반영되도록 항상 신경을 쓴다. 자유를 주되 책임도 함께 묻는다. 책임을 기피하면 자유에 대한 통제가 있을 수 있음도 매번 인식시킨다. 명령에 대한 복종이 아닌 해야 할 책무를 등한시하면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하게 지도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첫 만남부터 웃음기 지운 얼굴로 학생들에게 무섭게 보이려 애쓰지 않는다. 친한 척 웃는 가면을 쓰지도 않는다. 난 내 감정을 평온하게 유지하려 노력하며 가르치는 것 자체에 집중할 뿐이다.

교사로서 권위는 가르치는 실력에서 은은이 풍겨 나오는 것이지 교사 자신에 세우는 게 아니다. '훌륭하신 선생님'이란 인사를 학생들에게 시키는 후배를 보긴 했다. 권위를 강요하는 이 신박한 퍼포먼스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가르치는 일만 신경 쓰면 될 것을 적잖은 교사들이 변죽만 울리고 있다. 잘 가르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실력을 키우는데 신경을 쓰면 좋으련만...

매거진의 이전글운동신경 1도 없는 내가 농구부를 지도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