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서 선호하는 학생과 비선호하는 학생

사견

by Aheajigi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냐!"는 옛말이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모든 아이들을 똑같이 이뻐해 달란다. 이런 학부모와 상담하다 보면 본심은 자기 아이만 사랑으로 감싸거나 이뻐해 달라는 뉘앙스를 짙게 풍겨온다.

열손가락을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야 없겠지만, 분명 더 아픈 손가락과 덜 아픈 손가락은 있기 마련이다. 부모조차도 자식을 똑같이 사랑하지 않으면서 이건 참 어렵지 싶다.

아이를 사랑해 달란 학부모의 말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아이의 학교 생활이 순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이를 사랑해 달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지 애정을 쏟아붓는 사람이 아님을 아이들에게 말한다. 집으로 돌아가서 미주알고주알 말하는 아이들 특성상 학부모에게 전달하라는 것이다.

난 학생들을 대할 때 막연한 칭찬을 절대 하지 않는다. 잘 한 행동을 인정해 준다. 무한한 사랑은 양육자인 부모의 몫이지 교사의 영역은 절대 아니기에 그러하다.


분명 교사로서 선호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은 있다. 이건 아이의 첫인상이나 외모가 영향을 미치지는 않아 왔다. 신기하게도 교사가 좋아라 하는 아이들은 이전에도 그 이전에도 늘 또 다른 교사에게 긍정적 시그널을 많이 받아왔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교사가 예뻐할 수밖에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지 싶다.

교사가 학생으로서 좋아한 것이 먼저인지 아니면 이런 아이들이 교사들로부터 예쁨 받는 법을 먼저 알고 있어 왔던 것인지 알 수는 없다.


20년 넘는 교직 생활동안 선호하는 학생은 여럿이었다. 성별, 부모의 경제력, 학생의 지능은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교사인 내가 학생으로서 좋아라 했던 유일한 단 한 가지 특성은 배우려는 자세뿐이었다.

"가르치는 것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아이들."

배우려는 의지가 강한 아이들은 교사가 좋아할 수밖에 없다. 가르침이 업인 사람들에게 능동적 배움을 드러내는 아이들은 너무 예쁘기 마련이다. 가르치는 것을 이해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하기에 그런 아이들은 지적 성장이 확연하게 보인다. 가르칠 맛이 난다.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리는 학습능력은 교사에게 가르치는 재미와 보람을 선사한다. 교사로서 이런 아이들을 만나는 건 행운이자 고마운 선물이다.

행여나 이 어설픈 글을 읽고 선행 학습으로 공부를 미리 시켜야겠다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이다. 나름 선행학습 했다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냥 설레발치는 것 만큼이나 꼴보기 싫은 아이들의 태도도 없기 때문이다. 배우는 재미를 일깨워 주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일 것이다. 배움의 의지가 강한 아이들은 눈빛부터 다르다. 교사의 말을 듣는 자세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런 게 가르친다고 되는 것인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이와 정반대로 고집이 너무 강해서 가르침을 거부하는 아이들은 상당히 불편하다. 이런 아이들은 극도로 무기력하거나 그와 정반대로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다. 학습 방법을 바꿔가며 조금이라도 참여시키려 애는 쓰지만 노력대비 효과는 처참할 정도로 미미하다.

공부는 나 몰라라 하면서 학습 외적인 것으로 빈번히 문제를 일으킨다. 학습 외적인 것은 여벌이라 생각하는 내 특성상 이런 문제들은 상당히 신경이 거슬리며 극도의 피곤함을 불러온다.


합이 잘 맞는 아이들과는 교실에서 즐겁게 잘 보내지만, 어그러지면 서먹서먹함으로 지루한 한 해를 보내야 한다. 이건 교사나 학생이나 마찬가지지 싶다.

한동안은 이런 독특한 학생들을 바꿔보려 시도도 해보았지만 관계만 더 악화시킬 뿐이었다. 한 달가량 시도해 보고 여의치 않으면 최소한의 선은 지키도록 권하는 편이다. 내가 가르치는 품에서 벗어나려는 학생을 잡으려다 잘 배우고 있는 학생들을 방치하는 일만큼 비생산적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학교라는 틀에 잘 맞는 아이도 있고 말랑말랑해서 유연하게 잘 적응하는 아이도 있다. 자신만의 확고한 형태가 있어 학교에 잘 맞지 않는 아이도 있고 영혼이 너무 자유롭기에 규격화된 틀을 벗어나려 시도하는 아이도 있기 마련이다.

교사가 선호하는 학생과 비선호하는 학생의 구분은 학교라는 시스템의 경직성에서 오는 문제이지 아이 자체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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