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보다 못한 선배로 남지 않기 위해

한심스러운 앞선 자가 되지 않으려

by Aheajigi

교직을 갓입문한 20대 시절, 이미 한참 교직 생활을 했던 앞선 이들로부터 배울 게 없었다.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분명 괜찮은 이들도 있었을 텐데 지지리도 인복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나태함과 매너리즘에 빠진 삶이 무엇인지를 나에게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가르치는 것은 등한시하면서도 친목 배구에는 목숨을 걸고 있으니 이보다 더 한심한 이들은 없지 싶었다. 때로는 이런 자들로부터 배워서 어떻게 이 나라가 이만큼 살게 되었는지 그게 너무 신기했다. 다른 나라들 교사 수준은 이보다 더 한심했기에 우리나라가 이 정도의 성장을 거두고 있다 생각하니 쓴웃음이 났다.


젊은 시절 나에게 선배 교사들은 존경보다 멸시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건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코로나로 온라인 원격 수업을 해야 했을 때 그들의 한심스러움은 여실히 드러났다. 뻔히 보였다. 새로운 수업을 준비해야 함을 말이다. 하지만, 나보다 앞선 교사들의 선택은 회피였고 후배 교사들 또한 그들의 등뒤에 숨어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들의 궁핍한 핑계는 '어쩔 수 없다' 내지는 '나중에 제대로 한다'였다.

학교 관리자들도 그들의 이런 도피 본능을 막지 못했다. 어지간하면 학년별로 원격 수업의 수준을 맞추자는 회의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하향 평준화 하자는 건가요?"

나의 반발이었다. 보고 있자니 위아래를 할 것 없이 아주 편한 길들 만 찾고 있었다. 교육청은 한술 더 떴다. 몇몇 교사에게 학습과 관련된 자료 링크 사이트를 만들고는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이건 바보들의 합창과 다를바 없었다.


결국 40 학급이 넘는 근무 학교에서 쌍방향 원격 수업을 진행한건 나뿐이었다. 주거하는 지역 주변의 학교에서 쌍방향 원격 수업을 고생하며 하고 있던 건 아내와 나밖에는 없었다. 어떻게 아냐고? 지역 맘카페에서 엄마들끼리 주고받는 정보를 보고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오죽하면 그해가 끝나갈 때 우리반 학부모들이 이런 시국에 나를 만난 것이 아이들의 교육에 행운이라 메시지를 보내줄 정도였으니 그 실정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수준이었다.


또다시 어떤 일이 눈앞에 펼쳐질지 모르겠다. 위기의 순간이 되면 앞선 자들이 먼저 길을 헤치고 나아가야 하건만 거북이 마냥 머리를 감추는 꼴이라니...

그들은 남들 보기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앞선 자들이었다. 또 그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후배들이 배우고 있으니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싶냐고 묻고 싶었다.


먼저 걸어간 자들에게 대단함이나 존경심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앞선 자로서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였으면 한다. 그것이 먼저 간 이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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