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름이 평행선을 걸을 수밖에 없는 이유.
경험에 기인하다.
다름과 틀림을 우린 빈번히 혼용한다. 이것을 명백하게 구별하지 못할 경우 발생되는 일은 해결 없는 분쟁이다.
'틀림'이라면 옳고 그름일 면밀하게 가리면 된다. 법적 판결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하지만 '다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탕수육 부먹과 찍먹에 옳고 그름은 없다. 식성이나 취향이 다를 뿐 시시비비를 가릴 개연성은 없다. 다름이 좀처럼 접점을 찾거나 간극을 줄이는 것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아버지와 나의 정치색은 완벽하게 정반대다. 처음에는 옳고 그름의 문제로 생각했다. 나이가 들수록 이건 다름의 문제란 것을 알게 되었다.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아버지 영향을 받고 자란 내가 이렇게 정치색이 달라진 까닭이 궁금했다. 한참 고민 끝에 알게 되었다.
거기엔 아버지의 충격적인 경험과 나의 충격적인 경험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아버지는 6.25를 겪은 세대다. 지금 힘들다 말하지만 전쟁터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내가 상상하는 그 어떤 어려움보다 크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6.25로 모든 것을 잃었다.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모든 재산은 폐허 속에 묻혔다. 빨갱이에 빨 자만 들어가도 치를 떠셨다.
난 IMF를 온몸으로 겪었다. 살던 우리 집은 속절없이 사라졌고 갑자기 지하 월세방 살이로 바뀌었다. 대학을 다니며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어야 했고 하루하루가 희망보단 절망적이었다. IMF를 촉발시킨 그 우두머리와 정치인들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쪽 부류들이 뭐라 한들 절대 믿지 않았다. 해서 투표를 안 하면 안 했지 절대로 그쪽 부류들에게 표를 던지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듯싶다.
충격적인 경험은 삶 전체를 지배하는 듯싶다. 아버지와 나의 정치 성향에 접점이란 절대 생길 수 없지 싶다. 그럼에도 이젠 어느 정도 아버지를 이해한다. 그 어린 나이에 전쟁이라니. 내가 전쟁을 겪었다면 나 또한 아버지와 다르지 않을 것임을.
다름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다름의 간격을 좁히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은 것인가 보다. 각기 다른 경험은 공유가 불가능하다. 경험을 근간으로한 다름은 공감이 사실상 힘들다. 서로 간의 갭을 줄이기 위한 노력보다 다름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게 현명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