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명 넘는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성격과 개성이 천차만별이고 기본 배경지식과 성실성 또한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중간 아이들의 분포가 가장 많으니 거기에 중점을 두고 가르친다지만, 그건 명백한 거짓말이다. 중간이 어느 정도 인지를 제대로 파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한때는 가장 낮은 아이들을 끌어올리겠다고 신경을 쓴 적이 있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아이는 아이대로 골만 부렸고 난 나대로 좌절감에 휩싸였다. 노력대비 효과는 정말 미미했다. 모든 새는 오리라 말하고 오리밖에 쓸 줄 모르는 녀석에게 거위라는 낱말을 가르치는데 일 년이 걸렸다. 참새는 시도도 못해봤으니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싶었다.
수업에는 관심이 없고 말썽만 피웠던 아이들을 방과 후에 잡고 가르친 적도 있었다. 눈만 돌리면 교실에서 탈출하는 녀석들 덕에 난 교사가 아닌 교도관이 된듯한 기분이었다.
이쯤 되니 노력 대비 투자효율을 따져보게 되었다. 결국 하려는 아이들을 상대로 내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대상이 흔히 말하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아이들은 시험 성적을 위한 사교육으로 안 그래도 바쁘기에 내 관심의 대상은 아니다. 묵묵하게 주어진 것들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아이들이 내가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부류들이다.
분명 난 교육 무게의 추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발전 잠재력이 큰 아이들을 골라 내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다. 왜 다른 아이들에게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냐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항상 모든 기회는 공정하게 아이들에게 알렸다. 사교육에 바쁜 아이들은 여기에 할애할 잉여 에너지가 없고 배움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내가 이야기한 것을 행하는 부류는 조용하고 끊기 있는 아이들 뿐이다.
올해도 몇몇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 아이는 이미 몇 가지 과제를 던져주었다. 해마다 적어도 한 명 많으면 두세 명 정도의 아이들은 놀랄만한 발전을 보여왔다. 간간이 스승의 날이라고 나에게 감사문자와 선물을 보내오는 녀석들이 그렇게 신경 썼던 이미 어른이 된 과거의 아이들이다.
지금 내가 행하는 방식이 절대적 진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난 기간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그래도 나름의 효과를 거두는 차선책을 찾은 것뿐이다. 더 근사한 방안이 나온다면 추의 방향을 또 바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