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과 채찍'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널리 사용한다. 직장은 성과급이라는 돈으로, 초등학교는 간식으로 말이다. 한동안은 분명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효과가 있는 것일까?'
효과가 전혀 없지는 않다. 다만 이것이 모든 학생들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돈도 써본 이가 쓰는 법을 알고 음식 맛도 먹어본 자가 안다고 했던가. 당근이 친숙한 아이들에게는 당근만 보이기 마련이고 채찍 밖에 접해보지 못한 아이에게는 채찍만 도드라지게 보인다. 당근과 채찍 도입 취지는 전체적인 능력치를 향상시키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건 주는 이의 희망적인 착각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당근과 채찍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당근 혹은 채찍 한 가지만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었다.
채찍을 없앤다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 착각할 수 있다. 이건 노력 없이도 취할 수 있기에 당근의 취지가 사라진다. 그렇다고 계속 당근과 친숙한 아이들에게 당근이 쏠리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채찍의 강도를 줄이고 당근을 많이 주는 방식도 택해봤지만, 아이들은 기가 막히게 내 의도를 간파하고 자신들이 편한 방식만을 취사선택 한다. 노력이란 불편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어쩌면 이렇게 머리를 잘 쓰는지 가끔 아이들의 무한한 능력치에 놀라기도 한다.
당근과 채찍은 부수적인 것이다. 주가 되는 본연 그 자체에 흥미를 느껴 한다. 그래야 장기간 꾸준하게 발전적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공부라는 하기 싫은 것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에 당근이라는 보상을 사용하긴 하나 여기에는 적잖은 부작용이 따라옴을 항상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