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종종 갈길을 잃고 헤맬 때가 있다. 과거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정답을 찾지 못하기에 온전히 받아들임 말고는 딱히 벗어나는 방법도 없다.
내 삶의 존재 이유를 나에게 묻곤 했다. 하루 8시간 넘는 지루한 행군 속에서 찾은 답은 '정말 모르겠다!'였다. 긴 훈련이 끝난 뒤에서 문득 이런 버둥거림이 살아가는 이유겠거니 싶었다. 삶의 짐이 무거웠고 제반 환경은 갈수록 어려워질 때였다.
깊은 고민으로 힘겨워하는 것은 표출되지 않고 안으로 곪아 들어간다. 때로 이런 망상의 끝은 위험한 선택지를 향하기도 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처가 위험한 이유는 당사자 스스로 헤어 나올 길을 찾지 못하는데서.비롯된다. 표면 위로 나타났다면 주위 사람들 도움을 의도치 않게 받을 수 있을 테지만 이건 그조차도 없다. 완벽하게 혼자만의 캄캄한 세계로 점점 깊이 빠져들기 마련이다.영원히 빛을 잃기도 한다.
감정이 담긴 글을 쓰기 위해 인사이드 아웃이란 애니메이션 요약 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쉬는 시간에는 밝지만 수업시간만 되면 무기력했던 아이가 다가와 두 눈이 촉촉해졌다고 말한다. 이렇게 슬픔을 느낄 만큼 감정을 건드리는 영상 장면은 없었다. 분명 어떤 부분에서 자신의 삶을 투영했을 텐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보호자로부터 들었던 아이의 가정사가 떠오르자 추측은 충분히 가능했다. 태연한 척, 발랄한 척 버티고는 있었으나 양육자의 이혼이라는 과정에서 드러낸 일들이 깊은 상처로 남았지 싶다. 공부할 때마다 멍 때림과 무기력함은 헤매고 있는 이 녀석의 힘든 표식이었음을 너무도 늦게 알아챘다.
흔들리는 바위의 끝자락에 앉아 마음의 안정을 찾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위해 노력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장의 불안감이 떨쳐지지 않고서는 절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보이지도 않는 막연한 미래를 위해 공부하란 잔소리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들릴 리 없다. 두 양육자가 나누어졌어야 할 삶의 무게를 혼자 짊어진 이 아이의 보호자 사정도 알기에 아이에 대해 뭐라 전달하기도 어렵다.
교문을 벗어나면서 교사라는 옷도 같이 벗어두고 나와야 하는데 집까지 교사라는 옷을 입고 있자니 머릿속은 계속 뒤숭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