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 했던가!'
공적조서를 쓰는 칸은 항상 부족하다. 옮겨다닌 학교가 많기에 그러하다. 1년 만에 옮긴 적도 두 번, 5년을 가득 채운 학교는 딱 한 곳뿐이었다. 5년 만기를 채운 그 학교도 좋아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나가는 인사말처럼 답한 게 빌미가 되어 교육청 파견이라는 의도하지 않았던 일을 하게 되어 3년 만에 학교를 옮기지 못했다. 파견이 끝나고 있던 학교로 복귀했고 1년 뒤 다시 분교로 달아나듯 옮겼다. 기간은 5년이나 온전하게 꽉 채운 것은 아니었다. 23년 경력동안 옮긴 학교가 9곳이다. 남들은 정년 퇴직하고도 남을 만큼의 학교를 난 이미 옮긴 것이다.
동생 또한 미국에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에 한 번꼴로 회사를 옮겨 다녔다. 델타에서 도쿄전력, CJ까지는 내가 알고 그 이후로는 잘 모른다. 이번에는 미국 최대 기업이라는데 처음 들어보는 곳이다.
동생은 이직하면 연봉이 훌쩍 오르지만, 난 기껏 옮긴 것이 똥을 피하려다가 똥밭에 주져 앉았다는 후회를 종종 남기기도 한다.
동생이나 나나 역마살인지 한 곳에 오래 있는 것이 답답하다. 난 겨우 선택지가 교직이라는 울타리 안을 뱅뱅 맴도는 것이지만 말이다.
달라질 수 있고 바꿀 부분이 보이지만, 조직은 변화를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안정적인 현실을 흔드는 것은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다. 짜인 틀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내가 느낀 학교라는 곳과 동생이 부딪끼는 직장이 그러한 듯하다.
동생은 올해 또 회사를 옮겼고 난 내년에 학교를 이동하려 한다. 몇 번이나 더 옮겨 다녀야 정년퇴직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