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선생님도 누군가의 보물 같은 딸이었다.
이기적인 그들
아들을 부르는 애칭이 여럿 있다. 그중 하나는 엄마 아빠의 보물이다. 아빠로서 부족하지만 그만큼 아들을 소중하게 키우려 했고 지금도 노력중이다.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도 늘 말한다. 너희는 소중하니까 절대 다치지 말라고 말이다.
내 아들을 보물처럼 다루듯 눈앞에 아이들도 귀하게 여긴다.
귀하다 하여 모든 것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원석은 상대적으로 보석에 비해 가치가 떨어진다. 원석과 보석의 차이는 노력의 결실이 들어간 가공과정이다.
내 아들에게도 올바른 사회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지켜야 할 선은 분명하게 알려준다. 머리가 커진 아들은 어느 순간부터 엘리베이터에서 어른을 만나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는 집에서 호되게 잔소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와이프는 안타까워했지만, 분명 잘못한 일이기에 개입하지 않았다. 작은 것을 어기기 시작하면 큰 것도 마찬가지란 판단에 소중한 아들의 소소한 잘못에 난 엄격한 편이다.
가르치는 아이들은 귀하게 여기나 내 아들과 같은 엄격한 잣대를 기준으로 삼지는 않는다. 이는 부모의 몫이지 교사인 내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자녀가 소중하다 여긴다면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을 정해주고 넘지 않도록 제지를 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부모의 역할임을 학부모들도 알고 있으리라 여겼건만 모두 그렇지는 않았다.
내 아이가 피해를 줄 때는 별일 아니라 판단하고 거꾸로 조금의 해라도 입는다면 발끈하는 태도는 이성을 갖춘 인간이라 보기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양육자의 이런 한심스러운 작태를 당신의 자녀가 고스란히 보고 따라 한다는 사실이다.
가해자 학생이나 부모가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난리를 피우는 것을 보면 아이나 그 부모나 별반 차이가 없음에 한심스러울 따름이다. 그들은 난리를 치거나 없는 사실도 만들어내서 물고 늘어져야 처벌이 약화된다는 계산을 하고 있음도 모르지는 않는다.
일부 학부모들은 자기 자녀만을 위해 수많은 민원을 넣는다. 그게 과연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인지는 따져보지도 않는다. 당신들 자녀가 소중해서 그런다 치면 민원을 받는 선생님들도 누군가의 보물 같은 자녀란 생각을 단 한 번이라도 해봤는지 정말 묻고 싶다.
협박하고 버럭버럭 성질내며 위협하는 세상을 당신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데 그런 세상에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당신들 자녀들은 보이지 않는지 궁금하다. 한 치 앞이라도 내다본다면 정말 이러지 않을 텐데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