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기억은 생각보다 조작이 쉽단다. 타인에 의해서 날조되기도 하지만 자기 스스로 기억을 변조하는 일들도 비일비재하다.
같은 사안을 접하고도 각기 다른 기억을 떠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른이라면 이런 행태를 흔히 볼 수 있는 곳은 다름 아닌 경찰서이고 아이라면 교실이다.
갈등 상황의 대상들을 불러 세우면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다. 상대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고도 본인은 피해자라는 주장을 절대 굽히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는 기억을 나름 체계적으로 변조한 것이다.
부모라도 좀 이성적이면 다행인데, 대부분 이런 아이들의 양육자는 나잇값을 기대하기 힘들다. 누누이 말하지만 콩심은 곳에서 절대 팥은 안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종족의 특성은 절대 자기반성이란 게 없다. 임기응변으로 불리한 현사태만 타개하면 된다. 그 얕고 비논리적인 머리를 굴려 자기 딴에는 한편에 근사한 시나리오를 만든다. 그리고는 논픽션을 사실처럼 강력하게 주장한다. 처음에는 억울하다며 읍소하다 여의치 않으면 위협으로 태세 전환도 서슴지 않는다.
상식이 통하는 수준이었다면 대화란 게 통했겠지만, 20년 넘게 접해본 경험상 차라리 개를 앉혀놓고 말하는 게 소통이 빠르다 느낄 정도이다.
혹자는 마음을 이해하고 단호하게 훈육하라 말한다. 이건 인간대 인간으로서 대화가 통할 때를 기본 전제로 하는 것이다. 10년 넘게 어긋나며 벗어난 일이라면 10년 이상은 걸려야 온전한 범주로 다시 경로를 변경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서 갑자기 좋아진다거나 급작스레 개과천선 했다면 이건 오판이거나 사기이다. 지팡이 하나로 바다를 가르는 능력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자녀의 명백한 범죄급 행동을 부모란 자들은 사전에 인지했다. 낳고 기른 그들도 이 행위를 고치지 못했다. 결국 교실이란 공간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고야 말았다. 진심으로 사과했다지만, 그가 말하는 진심이 뭔지 난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진심이고 어떻게 하면 진심이 아닌지 판단 준거가 있는지 아리송하다.
자기 자녀의 치부는 장애라는 병명으로 덮어버리고 범죄적 행동에 대해 제지를 가한 대상은 처벌을 요구했다.
물론 장애는 보호와 배려를 받아야 할 것임은 맞지만 그 잣대를 피해 입은 아이에게도 적용시켜 사과 한마디로 넘길 수 있는 당연한 권리는 아니다. 장애아나 비장애아 가릴것 없이 제지를 통해 피해입을 우려가 있는 아이를 가해로부터 보호하는게 사회에서 통용되는 선순위이다.
부모란 자는 자기합리화를 통해 떳떳하게 자기 항변을 했고 일부 같은 처지에 있는 양육자들 또한 감정이입을 했는지 동조하는 분위기다.
그 특별한 자녀 한 명 건사하는 것도 힘들어하면서 교실이란 공간에서 각기 다른 많은 아이들을 대하는 그 당사자가 하루하루 얼마나 힘들지 한 번이라도 생각이란 것을 이성적으로 해봤다면 아쉬움이나 부탁을 했을 것이다. 지금은 전학으로 이 상황을 모면했다 판단하겠지만, 그 꼬리표는 당신과 당신 자녀에게서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