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기제 풀가동

이번 방학이 예전과 달랐던 이유.

by Aheajigi


5개월도 안 되는 짧은 기간 폐렴만 두 번 걸릴 만큼 몸은 엉망인 상태인 것도 해왔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이유이긴 하다.

하지만, 20년 넘게 방학이면 고심하고 계획을 세우고 설계를 했던 수업 연구를 멈춘 근본적 이유는 살아남기 위함이 크다.


가르침을 포기하진 않았지만, 더 잘 그리고 많이 가르치기 위한 욕심을 내려놓은 이유는 빈번한 정서적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 그 무엇보다 크다.

난 교사이기 이전에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다. 나라를 구하는 일도 아닌 것에 생을 걸만큼 용감하지도 않거니와 무모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런 태도 전환은 나뿐만이 아닌 많은 교사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직할 만큼 충분한 역량이나 과감한 용기가 없는 이상 절실하게 생업으로서 교직에 발을 담그고 있어야만 한다. 언제 불어닥칠지 모를 민원과 고발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롭기 위해 아니 교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용한 최대한 능력치를 끌어올려 나름의 방어기제를 다들 고심 중에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법은 교사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실정이고 그 칼자루는 학생과 학부모가 쥐고 있으며 버팀목이 되어야 할 기관장이나 상급기관은 제목숨부터 살겠다고 나 몰라라 하는 상태이니 참 암울할 따름이다.


학생들의 소지품에 녹음기는 넘쳐날 것이며 학생과 학부모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질 것이기에 정신과 치료를 받을 마음에 준비 역시 하고는 있다.(난 현재 자다 깨다를 반복했던 불면증에서 1년 반만에 겨우 조금씩 헤어나오고 있다.)


어쩌다가 방학이란 이 소중한 시간에 교육과 전혀 상관없는 교사로서 생존을 위한 고심에 빠져 있어야 하는지 착잡하다.

요즘 아이들 말을 빌리자면 정년까지 버티기 위해 남은 15년을 방어기제 만렙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