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는 이유

기절시키기 위함은 아니다.

by Aheajigi


25명 넘는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중점을 두는 부류는 교사마다 각기 다르다.


처음 교직에 입문했을 때는 가장 낮고 늦은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았다. 나는 교사 입장에서 관심이라 표현하지만 관심을 받는 학생 입장에서는 끊임없는 잔소리였을 것이다.

난 가르쳐야 할 것들을 지도해야 했고 그것을 잘 모르거나 혹은 피하고픈 이런 아이들에게는 괴로움에 연속이었을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해서 내가 관심을 쏟을수록 이런 학생들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져갔다.

(최근 들어 부진한 학생들을 대하는 방법은 변했다. 딱 한 문제 & 10분에서부터 시작한다. 보충지도가 끝나면 무조건 함께 편의점으로 가서 학생이 원하는 간식을 사준다. 마음의 거리부터 좁히려 했다.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치겠다는 욕심을 버렸다. 아이가 즐겁게 하나라도 알아가는 것이면 족하다는 생각으로 이젠 대한다. 차츰 시간도 늘고 점점 지도하는 것을 늘려나간다. 그럼에도 아이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공부하지 않으려는 학생을 공부하게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다반사다. 노력을 인풋 했건만 아웃풋은 반발뿐이다. 이건 명백히 역효과다. 더 이상 이런 아이들에게 노력을 쏟아붓지 않는 것은 열정 문제가 아닌 감정의 어그러짐 때문이다.

이점을 자각했을 때부터 호흡이 맞는 학생들에 중점을 둔다. 이 아이에게 더 많은 공부거리를 내어주고 방과 후에 더 많은 시간을 가르쳤다. 숙제도 할 수 있는지 아이 의사를 묻고 내어준다. 공부이기에 다른 아이들이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일은 절대 없다. 자신이 이런 그룹에 속하지 않았음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긴다.

내가 이렇게 관심을 집중하는 아이는 한해 한 명 있을까 말까이다. 가장 많았을 때가 3명, 없는 해도 부지기수이다. 학생들에게 할 것인지를 묻고 시작하기에 하겠다는 해당 아이가 없으면 마는 것이다. 올해도 한 아이가 있어 이것저것 시켜본다. 우직하고 차분한 여자아이다. 아이가 힘들어하면 언제든 알려달라고 아이 부모에게도 이미 문자로 통보했다. 힘들어서 못하겠다 하면 그날부로 더 이상시키지 않을 것을 눈치챘나 싶기도 하다. 하는 것도 있을 텐데 내가 더 얹어주는 꼴이니 아이는 아마 힘들 것이다. 잘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는 듯싶어 기절하지 않을까 걱정은 한다.

내가 있는 이 지역은 상위권이라 해봐야 대도시 중간에도 미치지 않는다. 경쟁력이 약하단 뜻이다. 발전 가능성이 가득한 아이들을 내버려 둘 수 없기에 시작했던 일이다.


내가 과연 잘하는 것일까? 그건 이 아이들이 다 커봐야 알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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