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가루 world
이지경을 만든 이들을 위한 간절함
사람은 생각처람 많이 변하지 않는다. 긍정적 변화라면 더더욱 바뀔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괜찮은 변화란 깊이 숙고하고 신중하게 판단하는 노력과 인내를 기반으로 하는 성숙함을 요하기 때문이다.
본인의 유년시절과 현재 모습에서 달라진 것이라곤 늙었음을 증명하는 주름뿐일 것이다. 되돌아보면 어릴 적의 행동 양식이나 생각은 나이가 들어도 기대만큼 크게 자라지 않았음도 자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 때 개차반이었다면 어른이 되어도 다르지 않다. 더 나빠지긴 쉬우나 더 좋아지긴 어렵다. 자신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어렵다면 유년 시절을 함께 했던 타인을 관찰하면 알 것이다. 과연 어릴 적보다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를 말이다.
그네들의 부모 또한 이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개차반 유전자뿐만 아니라 환경까지도 엉망으로 제공했을 테니 말이다. 하여 개차반 부모 밑에서 정상적 아동이 자라기란 결코 쉽거나 흔한 일이 절대 아니다. 더불어 그렇게 자란 이가 또 어른이 되면 그들의 자녀 또한 더욱 업그레이드된 인간말종이 되었음도 감히 예단한다.
흔히들 갈수록 엉망이라 말한다. 하지만, 엉망진창은 이미 한참 전부터 진행되어 온 일이다. 작금의 울림은 단지 미디어의 발전으로 크고 빠르게 부각되었을 뿐이다.
병원에 입원해서 간호사나 의사를 대하는 노인들을 보면 알 것이다. 이 노인들도 개차반 대열에서 결코 빗나가지 않았음을 말이다. 노년 환자들의 행동에서 그들이 지금 세상을 콩가루로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음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개차반들도 자식새끼에겐 끔찍(?)한가 보다. 학교에서 이토록 교사를 달달 볶아대니 말이다. 그토록 끔찍 아이들도 언젠가 사회라는 곳으로 나가서 누군가를 상대할 것이다. 점점 개차반이 폭증하기에 그들의 자녀도 이런 만행의 피해에서 자유롭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 장담한다.
학부모라 칭하는 당신들이 누군가를 낭떠러지로 내몰았듯 당신들의 그 귀한 자녀들도 또 다른 개차반 같은 것들로 크고 작은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상황이 악화 일로를 걷게 된다면 당신들의 자녀들도 벼랑 끝에서 안타까운 선택을 할 테고 말이다.
무고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하여 무차별적으로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한다. 이런 행동거지가 당장 속이 후련할지는 모르겠다. 이를 보고 자라는 당신의 자녀 또한 어른으로 성장하면 언젠가 반드시 똑같은 피해를 볼 것이다. 아니 반드시 꼭 당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오늘도 학부모란 위치가 갑인 양 착각하고 갑질 만행을 휘두르는 이들이 훗날 당신 자녀의 위패 앞에서 피눈물 흘리기를 바란다. 그래야 세상이 좀 공평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