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효하는 세상

콩 심은 데서 팥 나오길 기대하나!

by Aheajigi


눈앞에 보이는 이의 옷깃이 젖어들어도 절대 우산 한켠 내어주지 않는다.

아는 이가 눈물이 흘러 슬픔에 젖어들어도 자신의 어깨 한 귀퉁이 내밀지 않는다.

아이들의 행동 양식이 이 모양인 까닭은 양육자를 포함한 기성세대 모두의 작태가 거지발싸개 수준임을 드러낸 것일 뿐이다. 그래서 놀랍지도 않다.


이 나라에서 배려란 받는 것일 뿐 절대 주는 게 아닌가 보다. 그래서일까 배려를 받지 못했다는 불만은 포효를 부른다. 저게 사람 새끼인지 동물 새끼인지 정말 구분이 가지 않을 때가 빈번하다. 저런 것들을 길러낸 양육자란 것들의 가슴 한구석에 티끌만큼의 양심이나 배려란 게 있었긴 하나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아이들에게 배려를 눈씻고 찾을수 없는 이유임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갈등 상황은 필히 가해와 피해가 있어야 하건만 모두 억울하기만 하단다. 감정의 어긋남은 당사자간 자발적 조정으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이것이 당연한 사람 사는 이치이다. 내 잘못이란 없다고 확신하기에 간극이 맞춰질리 없다. 정상범주는 확실히 아니다.

사람이 아니기에 지랄발광을 하나보다 하면 모든 추태가 납득이 된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교실이란 울타리 안은 포효하는 미친 맹수가 왕이다. 사람은 이것들의 미친 짓거리를 말릴 수 없다. 양육자라도 정상이면 좋으련만 사람이 사람을 낳지 미친 맹수새끼를 싸지르지는 않기에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는다.


학교란 밭은 갈수록 미치광이 맹수들만 떨구고 있다. 이것들이 자라나 생활하는 사회가 과연 정상일 수 있을지 참 궁금하다.

미쳐 날뛰며 포효하는 소리만 가득한 세상은 이제 코앞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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