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다는 것은 예측이 불가함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경험의 빈도가 많지 않은 아이들은 상황에 반응하는 경험치도 미미하다.
익숙함은 가지고 있는 경험으로 상황에 대처가 가능하지만 새로움은 발생하는 사안에 대한 대응이 적절할 가능성 자체가 낮다. 아이들이 학교란 생소한 공간 자체에 잔뜩 긴장하는 이유이다.
처음 보는 또래들과 선생님이란 어색한 사람들까지 한데 어우러져 정신없이 돌아가니 아이들 입장에서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아이는 생전 처음 그런 곳에 가는 것이다.
"시간을 제한하다."
시간이 되면 앉아야 하고 시간이 될 때만 자유로이 움직이는 것이 허용된다. 자유가 보장된 시간은 턱없이 짧고 앉는 시간은 길기만 하다. 시간 제약은 유치원 때보다 강하고 분위기가 분명 다르다.
제약이 따르니 답답하고 뭔가를 알아야 한다니 부담도 더해진다.
추후 사회생활을 위한 연습의 시작이지만, 이건 본인이 직장 생활을 시작해서도 느끼지 못한다.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처럼 몸에 스며들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고픈 것을 제지당하다."
영혼이 한없이 자유로운 아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과시간 학교를 탈출하는 녀석들은 이제 정말 흔하다. 수업 시간 딴짓은 만연하기까지 하다.
학년별로 반드시 배워야 할 것들이 있고 이것을 습득하지 못하면 갈수록 공부와는 멀어지기 마련이다. 아이가 하고픈 것을 막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내내 해왔던 것들을 갑자기 할 수 없다는 좌절을 맛보는 시기이다.
아이가 힘들어하면 양육자도 학창 시절이 쉽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하고픈 것을 해야 할 시기와 해야만 하는 것을 해야 할 때가 있음은 명확하게 정해줘야 한다.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강요받다."
고집이 강한 아이들은 통제에 불응한다. 내내 이겨 먹었기에 학교라고 다르겠냐는 것이다. 교사의 잔소리로 고집이 수그러들어 지켜야 할 것들을 받아들이면 다행이지만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을 경우는 분명 있다. 그것이 내 아이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대부분 이런 상황이 오면 가정에 통보할 뿐 교사가 제지하지 않는다. 결국 일정 수준의 제지를 강력하게 거부하면 전혀 다른 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전담 수업시간이 되면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학교 어딘가 숨어서 스마트폰 게임을 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급식을 거부하고 학교 밖에 나가서 군것질을 한다. 이런 부류의 아이들이 초등 고학년이 되어 실행하는 실제 일들이다.
별거 아니네 싶은 양육자도 있을 것이다. 그 이상 벗어남도 얼마든지 있다. 상상할 수 없는 사고를 거침없이 자행한다.정말 심각힌 상황은 아니라 오판하면 안된다.(가출과 성문제가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것은 이미 한참 전이다.)
작은 일탈의 시작은 아이 머리가 커질수록 점점 위험한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지금 보이는 약간의 일탈이 점점 정상적 사회 생활에서 벗어남으로 치닫는 방향성의 출발점이기에 좌시해선 안된다.
초등 저학년 아이의 고집을 내버려 둬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해서는 안 되는 일에 강하게 맞서는 아이라면 어떻게 그 기세를 부러뜨릴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놓치면 이후 아이와 양육자의 삶이 순탄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뭔가 시키는 것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반드시 지켜야 할 일들이 늘어만 간다. 규칙이란 말이 나오고 약속 또한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난다.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숙제란 말로 학교에서의 공부가 가정으로 이어진다. 가정에서는 사교육으로 숙제에 숙제를 더한다. 하루의 절반 이상이 시키는 것들을 처리하는 것으로 가득 차버린다.
쉴 틈을 줄 수 있어야 한다. 12년 장기 레이스다. 초입부터 기절할 속도로 달리게 만들면 지쳐 쓰러져 버리거나 질려서 도망갈 수도 있음을 양육자는 기억해야 한다.
공부는 힘든 것이고 그 길을 잘 가고 있는 것이 대견함을 말과 행동으로 자녀에게 표현해 줘야만 한다.
"오늘도 수고했다." 중학교 1학년 아들이 가장 듣기 좋았던 말이라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오죽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