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안다. 자라나는 자녀가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엇나가기도 하고 고집을 부릴 때도 있다. 받아주기도 하지만 해서는 안될 선을 넘을 때는 단호하기도 하다. 잘한다 내지는 오냐오냐로 절대 자녀를 온전히 양육할 수 없다.
교실은 그런 아이들이 수십 명 모여 있다. 특수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은 소수이긴 하나 일당백 몫을 한다.
맥락은 어디 가고 한 시점에 대해 태클을 걸어 결국 해당 교사를 쫓아내는 결과를 이뤄냈다. 자녀의 잘못된 행동은 온데간데 없고 모든 것을 교사 탓으로 몰고 가는 작태와 이를 유죄로 인정한 사법 시스템에 실망이 크다.
소송에서 이긴 이의 양육자는 전리품인 양 뭐라 인터뷰를 한다. 승소했음에도 자기 항변이 필요한 이유가 정말 납득되지 않는다. 요지경을 만들어 놓고서도 당당한 척을 해야 하니 자기 합리화가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승소가 당신 가족에 대한 시선을 바꾸지 못함은 모르나 보다. 앞으로도 꼬리표처럼 계속 이 사건은 당신들의 모습이 목격되는 그 모든 곳에서 회자될 테니 주변의 쑥덕거림은 삶에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감내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려 해도 드러난 본모습으로 인해 절대 가려지지는 않을 것이다.욕먹으면 오래 산다는데 아주 장수해서 좋으실 듯
덕분(?)에 더 뚜렷하게 명확해졌다.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만 할 뿐 그 외의 모든 것은 모르쇠로 일관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문제 행동을 할지라도 하지 말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다. 가해자 쪽은 그렇다 치더라도 폭행을 당하는 피해학생을 막아줄 법적 권한이 교사에게는 없다. 피해학생 보호를 위해 가해학생을 막다가는 교사가 아동학대로 고발당할 테니 말이다.나라를 구하는 일도 아닌 아이들 싸움을 말리는 일에 직을 내던질 생각은 추호도 없다.
190일 한시적 인연도 나의 그릇된 생각이었다. 아이나 양육자와 인연은 이제 없다. 190일 속 수업이 있는 6시간 남짓 가르치는 교사로서 직업적 역할만 충실해야겠다고 생각을 고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