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지도가 교사-학생&학부모 갈등의 씨앗이다.
잡스런 학교
"어떻게 누군가의 생활을 지도하란 것인가?"
행동은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고는 자라온 환경과 경험이 물과 거름이 되기 마련이다.
생활은 행동과 사고가 일어나는 전체이자 타인과의 상호작용이다.
생활지도가 허무맹랑한 발상인 이유이다.
"말도 안 되는 생활 지도가 갈등을 불러온 것이다."
자라온 환경이 제 각각이듯 누군가와 어울리는 방식 또한 천차만별이다. 서로 다른 아이들이 비좁은 공간에 모여있는 교실은 생각과 행동양식이 각기 다른 주체들이 뒤엉켜 있기에 어찌 보면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 필연적이다.
인식과 판단,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대부분 가정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무리에서 어우러지지 못한다 해도 해당 아이나 양육자는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문제의 본질이 왜곡되고 엉뚱한 쪽으로 화살의 방향을 돌리거나 오히려 보란 듯 당당함을 내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물며 이를 해결하는 지도를 하라니 이건 볏짚을 이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갈등을 판정하는 시스템을 내버려 두고 엉뚱한 곳에 일을 떠민 것부터가 잘못이다."
잘못된 행동을 하면 이를 막는 경찰이란 사회 시스템이 존재한다. 죄의 잘잘못을 따지는 법원도 있다. 전문성과 권위를 갖는 제도를 두고 아이들 문제이니 학교에서 해결하라는 발상이 생활지도와 학교폭력이다. 시골은 마을 단위로 움직이니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이장님께서 처리하라 한다면 어떤 말이 나올 듯싶은가?
수위를 높여가는 아이들은 이제 지도나 훈계가 통하지 않는다. 교사의 권위가 있기는 하나 싶은 사회에서 문제를 중재하고 처리하라 하니 거꾸로 교사가 소송을 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선을 넘는 행위를 막기 위해 미국은 경찰이 학교에 상주한다. 필요하면 경찰이 학교에 파견되어야 할 일이지 교사가 하지도 못할 일을 떠안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전문성 운운하며 학교를 잡화점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이들 폭력문제가 늘어나니 경찰이 부담된다 하여 학교로 떠넘겼다.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한 세월호 사건은 교육의 문제라는 얼토당토 안 한 이유로 생존수영이라는 실효성도 의심되는 수업이 학교로 들어왔다.
지진대피 훈련과 화재대피 훈련에 앞서 내진 보강 시설 및 스프링쿨러 설치가 있어야 함에도 운동장 뛰어내려 가기만 이어진다.
보육은 엄연히 복지문제임에도 돌봄과 늘봄이란 이름으로 학교로 떠넘겼다.
사교육도 학교 내로 넣는다 하여 운영되는 것이 방과후학교다. 강사료는 외부강사가 취함에도 그 전반적인 일은 교사가 담당한다.
떡볶이 전문점 간판을 달고 분식에서 한식을 넘어 양식메뉴까지 있는 식당이 현재 이 나라 학교 모습이다. 전문분야가 의심스럽게 잡스럽지 아니한가!
가르치는 교육이 점점 존재감을 잃어가는 학교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