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찬 삶이 현실적으로 바뀌는 순간

언제부터였을까?

by Aheajigi


슈퍼맨이 한참 유행할 때 망토를 두른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바지 위에 붉은 팬티까지 입을 용기는 없었지만 말이다.


겨울 왕국 애니메이션이 극장에서 사라져도 엘사 드레스와 렛잇고 소리는 한동안 이어졌다.

이런 기대찬 삶이 가능한 까닭은 허구 속 주인공과 현실의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기에 가능하다.


누구나 자신이 삶의 주인공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앞으로 일어날 막연한 미래에 대한 기대감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붉은 망토를 풀고 엘사 드레스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몸이 자라서가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순간 뜨거웠던 가슴이 식어버리기 때문이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조연도 아닌 스치듯 사라지는 엑스트라임을 알아버린 것이다.


삶이 이상처럼 낭만적이면 좋으련만, 힘든 일들 끝에 희망찬 무엇인가 있으면 버티련만 현실은 절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나쁜 상황 끝에 더 어려움이 있기도 하니 삶에서 기대란 것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현실 속에서 나를 정확하게 직시하니 낭만이 사라졌다. 꿈? 목표? 가시권에 들어오지 않는 한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아들의 철이 늦게 들었으면 싶다. 그래도 해볼 만하다고 믿는 시기가 길었으면 했다. 중학교 2학년을 올라가는 아들은 의치한 대학을 벌써 언급한다. 지나치리 만큼 현실적인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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