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다.
일깨워줘야 할 것
13세가 되도록 한글을 쓰지 못하는 아이가 있었다.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아이는 전혀 기죽지 않고 생활했다. 다행이다 내지는 해맑다 생각했다면 엄청난 오산이다. 이 녀석은 끊임없이 분란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쉬는 시간은 놀이 관련 분쟁, 수업시간은 학습 기피로 같은 모둠 친구들과 말싸움으로 말이다.
속내가 궁금했다.
"부모님이 언제까지 지금처럼 널 챙겨줄 수 없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네 부모님도 머지않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일을 못한다 했다. 그제야 알아듣는 표정이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했지만 걱정 없다는 표정이다.
나중에 어쩌려고 그러냐는 물음에 한글도 모르는 아이는 명쾌하게 대답했다.
"그럼 누나들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돼요."
이 말을 그대로 집으로 전달했더니 양육자는 호쾌하게 웃고 만다. 전화기 넘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걱정이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는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확실하게 뻗은 것이었다." - 기생하는 삶 -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어 남은 기간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내 아들을 봤다. 아이가 방심한다 싶으면 엄마와 아빠도 늙어감을 주지 시켰다. 언제까지 뒷바라지를 하지 못함을 말이다. 대학을 가면 졸업까지 그렇지 않으면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가 챙겨주는 마지 노선임을 명확하게 인지시켰다.
아들에게 부모가 언제까지 든든한 뒷배일 수 없음을 일깨워 준 것이다. 다행스레 아들은 공부를 손에서 멀리하지는 않고 있다.
비빌 언덕을 보고 지나치게 기댄다면 자녀라 할지라도 스스로 서는 노력을 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영생불멸의 삶을 살 수 있는 부모라면 그럴 필요가 없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