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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jigi Apr 09. 2024

마음의 거리

뭘까?


학생들이 하교하고 나면 창문을 열고 청소를 시작한다. 수시로 바닥에 뒹구는 학생들이 먼지를 뒤짚어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15년 전에 출장차 방문한 개발도상국도 학교에 청소하는 인력이 별도로 있었다. 이 나라 학교는 청소를 학생들에게 떠넘기는 것에 이상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후진국도 안 하는 학생 청소라는 부당함을 떠넘기지 않으려 내가 청소를 하고는 있지만 어깨 회전근에 문제가 있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청소가 마무리되면 교실 문을 잠근다. 행여나 있을지 모를 오해의 여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교실 전등도 교탁 위만 남겨두고 모두 끈다. 텅 빈 교실에서 잡무를 처리하고 내일 가르칠 부분을 살펴본다. 매일 반복하는 나의 직장 루틴이다.


작년에는 엉겨 붙는 아이들로 이것이 불가능했다. 수업이 끝나도 집에 가지 않고 달라붙어 애를 먹었다. 시간이 부족했다. 방과 후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다시 교실로 향하는 녀석들로 정말 쉴 틈이 없었다.


지난주 조퇴하려 교문을 나서는데 작년 녀석이 따라온다. 전학 간다는 소식을 전하며 입을 실룩 거린다. 잘 가라 했더니 자기가 전학 가서 서운하지 않냐고 묻는다.

"내가? 왜?"

반문하니 입을 실룩거리며 와락 안겨왔다. 가서도 잘하라 등을 토닥여주며 다시 학교 안으로 들여보냈다.


작년과 올해 학생을 대하는 온도차가 있다. 특별히 무슨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본래 내가 추구하는 직장 생활은 오히려 작년보다 올해가 더 이상형에 가깝다.  학생들과 적정한 거리를 두는 직장인으로서 교사를 추구한다.


어떤 지점에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의 관계란 한쪽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반응을 달리하듯 학생이 변했기에 교사인 나의 태도도 변함은 당연하다. 내 스스로가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여전히 작년 녀석들은 나만 마주치면 매달리고 달라붙고 난리다. 쉬는 시간이나 수업이 끝난 이후 찾아오는 녀석들도 있다. 올 한 해를 같이 해야 할 학생들은 이런 모습에 신기하단 표정이다.


학생들과 적당한 마음의 거리를 좁힐 생각은 없다. 그 거리는 대부분 내가 아닌 학생들이 줄여왔다. 거리가 사라졌다 느낀 녀석들이 아마도 내게 매달린 듯싶다.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학생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받아주는 것이 갈수록 벅차다. 학생들과 인연을 일 년으로 제한했듯 일정 거리를 두는 것도 습관화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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