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몰라서

기찬 8세

by Aheajigi

어설픈 한글 실력 8세 2학년들이다. 한글 공부가 필요했고 학생들과 의견을 나눴다. 매주 한 번 받아쓰기를 하기로 했다. 공부는 집에서 한다기에 그러라 했다.


며칠 전 다섯 번째 받아쓰기를 했다. 한 문장씩 음성으로 문장을 제시하는데 한 녀석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다섯 번째 문장을 제시할 때 그 녀석 시선이 내 눈과 마주쳤다. 그제야 주섬주섬 공책과 필기구를 꺼내느라 분주했다. 다음 문장을 제시했지만 녀석은 시늉만 할 뿐 쓰지 않고 있었다. 교탁과 정반대 끝쪽에 있으니 안보이겠지 오판하며 쓰는 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 문장을 제시하고 녀석에게 받아쓰기한 공책을 가져오라 했다.

"왜요!"

녀석은 거부 반응을 보였다.

다시 가지고 나오라 말했다.

뭔가 이상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꿈쩍도 안 한다.

계속 못 들은 척을 하기에 경고성으로 재차 불렀다.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느릿느릿 가져왔다.


'역시나!'

공책은 깨끗했다. 왜 아무것도 쓰지 않았냐 했더니 그 대답이 더 가관이었다.

"한글을 잘 몰라서..."

부글부글 속이 끓었지만 재차 물었다.

글을 읽으면서 한글을 모른다고 말이다.

"정말 모르는데."

눈도 꿈쩍 안 하고 거짓말이다.

국어책을 들고 나오라 했다. 책 여기저기 쓴 글자는 뭐냐 다시 물었다.

"그건..."

똑바로 말하라 했더니 계속 우물쭈물 혼잣말을 했다.

받아쓰기 공책을 다시 살폈다. 분명 이번이 다섯 번째인데 첫 장을 빼고는 깨끗했다. 첫 장도 대강 끄적였을 뿐 올바르게 쓴 문장은 하나도 없었다.


안 하려고 거짓말을 했으니 오늘 받아쓰기 내용을 쉬는 시간에 써보라 했다.

"전 거짓말을 안 했는데요?"

네가 지금 나를 바보로 아냐고 되물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으면서 한글을 모른다고 한 것이 거짓말이 아니면 뭐냐고 물었다.

"그래도 거짓말은 아닌데."

8살짜리가 이 정도니 앞날이 훤했다. 더 말을 해봐야 수긍할리 없다 싶어 마지막 한방을 날렸다.

"알았다. 받아쓰기 공책에 아무것도 안 쓴 것은 사진으로 찍에서 부모님께 메시지로 보낼게. 그리고 한글도 잘 몰라서 단 한 문제도 답을 안 썼다고 대답한 것도 함께 보내마."

그제야 녀석의 동공이 흔들렸다.

"엄마와 아빠에게 똑같이 보낼 테니 왜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직접 집에 가서 설명드려라."

마지막 일침을 가했다. 그제야 녀석은 거짓말도 맞고 하기 싫어서 안 했다고 실토를 했다.


이 녀석의 고집과 거짓말을 모른 척하지 못하고 눌러버린 이유는 마중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넘기면 어울리는 녀석들에게 무용담마냥 소문을 내고 결국 이런 행태가 교실전체로 퍼지는 것이 뻔히 예견되어서였다.


이런 부류의 녀석에게 변화를 기대하거나 더 관심을 줄 생각은 애초에 없다. 내가 신경 쓴다면 녀석과 관계는 악화될 것이고 난 아동학대로 고발당할 위험만 커지기 때문이다.

다른 멀쩡한 녀석들에게 이 녀석의 공부 안 하기 영웅담(?)이 널리 퍼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일 뿐이다.

이제 겨우 8세 거짓말이 저정도 내공이라면 어찌해봐야 무용지물임을 지난 25년 경험적 지식으로 익히 안다.

변화 가능성이 희박한 일에 쓰잘데 없이 에너지를 허비하기에 난 지나치게 효율성을 따지는 사람이다.

기가 차서 뒤로 넘어갈 지경을 만드는 8세의 드라마틱(?)할 앞날을 굳이 애를 쓰면서까지 훼방놓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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